(대원스님) 믿음이 확철대오와 직결된다는 글 중에서
대원스님의 글을 읽었다. '믿음이 확철대오와 직결된다'는 글이었다. 불자의 믿음을 강조한 법문에 공감하지만 말미에 적힌 구절들을 읽으며 왠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받아들이면 주지스님이 여색을 밝히든 어떤 행위를 하든 그저 믿고 공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메세지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의도가 그러하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찰을 오고가면서 2년을 깊이있게 고민하던 일이다.
먼저 스님이 적은 구절을 옮겨보면 이렇다.
저는 어려서 절에 들어왔지만 절대 불신해 본 일이 없습니다. 주지스님이 여자를 끌어안고 잔다고 해도 나는 저분이 나쁜 사람이다, 스님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질 안했습니다. 저분은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분이 오만 구박을 다 하고 경책을 하고 모질게 해도 그분이 도인이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였지, ‘저게 무슨 가짜 땡초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있었다면 내가 그 사람 경책을 받겠습니까? 어림없지요. 그때 그렇게 못 견디고 도망간 사람이 오백 명이 넘었습니다.
일단 스님의 경험이니 스님에게는 100% 맞는 말이겠지만, 그것이 곧 일반 대중에게도 100% 맞는 말이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적어야겠다. 예를 들어 확철대오한(?) 스님인데 무언가 막행막식을 일삼는 어떤 스님이 있다고 할 때(물론 나는 정말 확철대오라는 것을 하여 불성에 통했다면 이유없는 막행막식이 있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막행막식에 어떤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 안에서 통과되는 이들이 스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원스님의 경험도 그런 것일 수 있다. 법화경 수오백비구기품에 비슷한 구절이 있다. 낮은 근기의 중생이 고귀한 것을 어려워하는 것을 알기에 보살이 일부러 모자라고 탐진치에 물든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중생을 가르쳐 결국은 성불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스님의 글과 상황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으로 인해 불법에 더 편하고 가깝게 다가간 것이 아니니 말이다.
출가는 세속의 욕락을 떠나는 일이다. 출가한 이가 여인을 품는다면 그것은 아직 떠나지 못한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니, 아직 완성되지 못한 우리로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돌이켜 반성하고 떠나려는 고민과 노력이 없다면 갈 길이 먼 것 아닐까. 그런 대상에게서 부처님의 무엇을 배워야 할까. 아무리 한소식한(?)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모습을 본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혼잣말을 할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여인을 품었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서 스님을 대함이 다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돌이키고 반성하는 이와 깊이 빠져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는 매우 다르다.
또 불교는 마음으로 지어가는 것을 말하는 가르침이 아닌가. 사실 도적을 도인이라 여기는 강철같은 믿음이 공부하는 우리를 한 단계 더 높은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어갈 수 있다. 이 때에는 대상이 도적인가, 도인인가가 중요하지 않으니, 믿는 이의 마음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절에서는, 승복입은 이는, 막행막식을 해도 늘 부처님으로 공경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을 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법만큼이나 전하는 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승복을 입은 이는 출가의 의미를 새기며 그 일을 정성껏 해야 하고 재가의 불자들은 그런 마음가짐의 출가승에게 배워 부처님의 가르침에 바르게 다가가야 한다. 출가승이 아직 자기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내세울 일이 아니며, 그런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중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편안하지 않다.
이렇게 글을 적으면서 스님 법문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한데, 적을수록 미묘하며 더 적을 것들이 많아질 둣 하여 부처님이 가르치신 중도가 공부에도 필요한 것 같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한다. 불자는 믿는 마음이 지극한 가운데 왜 그런가에 대한 사유를 함께 일으켜야 한다. '왜 그러한가, 적절한가'와 같은 사유는 불신과 다르다. 분별로 시작하는 듯 여겨지지만 결국 밝게 알아지는 과정으로 들게 하며 지극한 믿음으로 들어가게 한다. 또 불자의 신실한 믿음은 맹목과 다르다. 맹목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맹목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밝게 아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깊고 넓게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글 적다 보니 간단하지 않은 것을 시작한 것 같다. 표현하기 참 애매하고 미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