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끔 가위에 눌린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1. 24. 12:32

초등학교 시절 극심하게 가위에 눌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번 가위에 눌리면 힘겹게 깨어나고 다시 눌리는 과정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하는 날의 연속이라 '아, 이제 시작이구나' 느껴지는 날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졸립기는 하고 가위에는 눌리고. 늘 불을 켜고 잤고 함께 자는 언니 곁에 찰싹 붙어자기도 했지만 좋은 대책이 되어주지 못했다. 당시 1층이 가게, 2층이 집인 건물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은 1층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와 2층을 거쳐 옥상으로 흘러가는 여자의 악마같은 웃음소리를 듣기도 했고 가위 눌리던 어떤 날은 누워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잡아당겼다가 밀어제치듯 상반신이 일으켜졌다가 다시 뒤로 벌렁 자빠지기도 했는데 일으켜졌던 순간 여전히 누워있는 나를 보기도 했다. 지나고 나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런 때에 잘못 길을 들면 무당이 된다고 누군가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날이 있었다.


불교 수행에 들어서고 나서 이런 현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을까. 그래야 말이 될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 극심했던 수준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지금도 가위에 눌린다. 염불을 열심히 하던 어느날 약하지만 가위눌림 현상을 다시 경험하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염불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했다. 결국 내 문제임을 알면서도 '그러면 안되는 것'이라는 마음이 컸다. 여기에서 잘못 흐름을 타면 이렇게 된다. '염불이 효과 좋다고 하더니 별 것 아니군. 더 쎈 기도가 무엇일까.' 다행히 나는 그렇게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 일단 가위눌림인지 뭔지 그 비슷한 현상의 모습이 과거와 다르기는 했으니, 살짝 괴롭다가 깼다가 두, 세 차례 반복하는데 크게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잠시 후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수행 이후의 가위눌림은 대략 그랬다.


이제 수행하는 내가 여전히 만나는 가위눌림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적어보려 한다. 드러난 현상은 비슷한데 그 현상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첫째, 나를 괴롭히는 외부의 무엇에 대해 방점을 찍지 않으며, 불보살을 믿고 의지하여 그것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것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물론 무섭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다시 말해 내 역량을 벗어나는 대상(?)을 마주하게 되면 의지하고 보호받는 불보살의 힘에 대해 새기면서 스스로를 안심시킬 것이지만). 둘째, 그런 현상은 내 밖에서 오기도 하고 내 안에서 오기도 한다 생각한다. 그럼 '안에서 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그럴만한 상태이므로 그것을 알라고 드러나는 현상이라 본다. 환자가 병이 있으면 병증이 드러나듯, 수행하는 나의 상태가 그러해서 드러나는 현상이니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정진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알아차려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회복하면 극복되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며 미흡하지만 그리 산다.


'안에서 오는 것'에 대하여 '밖에서 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우리 대부분이 관심갖는 영역이 이 부분 아닐까 싶다. 불자의 수행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밝히고 인연된 이들의 삶을 밝히는 힘을 점차 갖추어가기 때문이다. 그의 뜻과 언행은 주변에 영향을 미치니 그런 불자에게 '지금의 이 상황을 알아달라'고 두드리는 대상의 힘겨운 신호와 같다 생각한다. 물론 악의적인 에너지를 갖는 대상이 있어 상대를 해치려는 뜻에서 일어난 현상일 수 있지만, 수행이 바르다면 불보살과 선신의 옹호를 받기 마련이니 결국은 안심할 수 있다. 충분히 안전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이해한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에도 불자의 안전은 보장받는다. 그 안전에 안주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의 경우 결국에는 안심으로 돌아가게 되며 혹시라도 게을러지고 탁해진 마음이 신경써야 할 부분에 대해 무심해진 것은 아닐까를 생각하며 염불 한번이라도 하고 그 공덕을 대상향해 회향한다. 사실 자세히 살피면 가위눌림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크지만, 그 마음에 더해 불자의 마음을 쓰려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정답이 있겠지만 자신의 생각이 정답의 부류에 드는지는 알기 어려우니 오늘도 노력해나갈 뿐이다. 다시 말해 이 개인적 의견에 크게 매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내 상황에 대한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다만 모든 상황과 순간을 맞이하여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피는 마음에 더해 무엇을 향해 나갈 것인가를 살핀다면 오늘을 지난 내일이 더 밝아지리라 믿으며 그렇게 전하고 싶다. 가위눌림으로 고통스럽다면 바른 가르침을 접하여 자신을 반성하고 다른 이들의 안위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라. 우리를 해하려던 마음도 어느날인가는 비추는 햇살에 얼음녹듯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