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족이 미울 때 생각해 볼 일

향광장엄주주모니 2023. 4. 29. 11:19

염불을 하면 폭풍 같던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염불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습니다.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하루를 노닥거리며 보냈습니다. 핑계 삼아 그랬습니다.

 

어제는 이런 나를 경책 하는듯한 글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기분 따라 움직이는 어리석음을 냉철하게 꾸짖는 글이었습니다. 반성하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일상 수행을 지어가느데 이번에는 염불 중에 어머니에 대한 짜증이 밀려옵니다. 

 

함께 살아오면서 특별할 것도 없는 행동들인데 어제는 유난히 분노, 짜증, 미움의 감정들이 정신없이 일어났습니다.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면서 잠들기 전 목표한 염불을 간신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머리맡에 정화의 힘이 있는 그림 한 점을 두고 말이죠.

 


오늘 아침 5시 어머니의 알람소리에 잠시 잠을 깼는데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에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방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한쪽 구석에 지저분한 것들이 많아서 쓸어내던 중 장수벌레 비슷한 것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힘껏 내리쳤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명료하고 크던지 깜짝 놀랐습니다. 문득 장수벌레를 죽이면 안 좋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되더군요.

 

아무튼 세게 내리쳤는데 벌레가 살아있었습니다. 떨어져 나간 집게발 하나가 화가 난 듯이 움직였고 나머지 몸체는 분노에 휩싸여 이리저리 맹렬하게 날아다녔습니다. 무서워서 문을 닫았는데 그것은 저를 찾기라도 하는 듯 집요하게 문을 향해 돌진했고 마침내 유리를 깨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벌레가 유리문을 깨버렸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나무격자로 된 문 안으로 도망쳤는데 갑자기 벌레가 덩치 좋은 남자의 모습이 되더니 격자 사이로 상체를 들이밀면서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공격당하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내 몸을 내어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잠에서 깬 저에게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꿈이 어쩌면 지난 인연, 그로 인한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병적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는 어머니 모습 위로 집요하게 저를 쫓던 벌레가 오버랩되었습니다. 삶을 돌아보면 집착하는 어머니로 인해서 피해를 보면서도 여전히 저는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매여 있습니다.)

 

만약 정말 그런 인연이라면 지금의 어머니 모습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자신의 생명을 앗아간 대상인데 괴로움을 주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저는 그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 채 단지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면서 제대로 살라고 충고합니다. 정말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일이죠.

 

저는 지금껏 어머니 앞에서 잘못 살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얼핏 보면 옆에서 이것저것 거들고 돌보는 효심 있는 자녀 같지만, 이것은 마치 곪아버린 상처의 중심을 치유하지 않고 표면만 소독하고 안심하는 어리석은 자와 같아서 핵심에 닿지 못합니다. 상대의 모습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참회하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껏 부모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히 우리가 지은 바가 있어서 지금 그것을 갚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꿈을 꾸고 보니 실제 크게 와닿은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이죠. 또 그러니 상대를 보기 전에 스스로를 단속하고 선업을 쌓아가라 이야기합니다.

 

먼저 잘못된 것을 참회하고 상대의 용서를 받아야 곪은 것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상대의 행복을 위해 올바른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어머니를 향한 잔소리를 접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관성이 있어서 칼같이 끊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죠. 못마땅함이 올라올 때마다 내가 불구로 만들어버린 벌레를 기억할 것이며 무의식에 새겨질 만큼 집요함과 분노에 휩싸였던 존재를 기억할 것이며 큰 몸으로 변화되어 나를 위협하던 대상을 향해 나를 내어주는 것이 맞다고 다짐하던 꿈속의 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불보살님은 정말 자비로우십니다. 괴로워하는 저에게 이렇게 생각할 여지를 주시네요. 부모이시고 큰 스승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