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거짓말(백유경)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8. 23. 08:18

모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백유경에 나오는 글이라 하는데 읽어보라고 올린다. 인간 군상에 대한 통찰력이 이런 것 아닐까 싶다.


거짓말
옛날 어떤 사람이 한 마리 검은 말을 타고 적진을 치려고 전쟁터로 들어갔다. 그러나 적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감히 싸워보지 못했다. 그래서 얼굴에 피를 바르고 거짓으로 죽은 것처럼 꾸며 죽은 사람 속에 누워 있었고, 그가 탔던 말은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다. 군사들이 모두 떠나자 그도 집으로 돌아오려고 남의 흰 말 꼬리를 베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네가 탔던 말은 지금 어디에 두고 타고 오지 않았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내 말은 벌써 죽었다. 그래서 그 말의 꼬리를 가지고 왔다." 곁에 있던 사람이 말하였다. "네 말은 본래 꼬리가 검었었는데 왜 흰가?" 그는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세상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스스로 인자한 마음을 잘 닦고 실천하므로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중생을 살해하고 온갖 고통을 주면서 망령되게 착하다고 일컬으며 악이란 악은 모조리 행하니,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말이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것과 같다.
 -백유경-


어제 아버지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화를 내고 나서 집을 나와 개천을 걸었다. 걸으면서 어떤 생각, 느낌이었을까. 이것이 도대체 수행자라 할까라는 생각, 화를 낼 필요가 뭐 있었을가라는 생각, 아버지를 신경쓴 것은 내 마음이고 받지 않고 기분나빠한 것은 아버지 마음인데 그것에 화를 내는 것은 호의도, 자비도 아닌 탐진치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걸었다. 그러고 보니 지장경 매일 읽는 어머니가 거의 화를 내지 않고 평온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수행 잘되었는가. 어머니는 나에게 배운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품성은 어떤 면에서 나보다 앞서있다.


만약 내가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아서 경전을 읽고 자비를 말하면서 내 공양의 으뜸인 부모님을 귀히 여기고 받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얀 말꼬리를 잘라온 사람처럼 거짓되다. 만약 당신이 소리높여 자비의 부처님을 외치더라도 누군가를 향해 빈정거리고 경시하는 마음과 언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얀 말꼬리를 잘라온 사람처럼 거짓되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다른 말꼬리를 잘라왔다는 것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알 날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어제 부끄러움을 느끼듯 자신의 이격된 사람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알아질 날이 그에게도 올 것이다.


오늘은 이 구절을 마음에 담아 사유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인자한 마음을 잘 닦고 실천하므로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중생을 살해하고 온갖 고통을 주면서 망령되게 착하다고 일컬으며 악이란 악은 모조리 행하니,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말이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것과 같다.' 희안하게 이 구절을 대하면서 오버랩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