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고기먹는 문제, 인과를 생각하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1. 17. 09:12

대순진리의 전경을 보면 칠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조기 한마리도 먹을 사람을 정해놓고 잡힌다는 구절이 있다. 오래 전에 읽은지라 표현이 맞는지 잘모르겠지만 대략 내용이 그렇다. (젊은날 대순진리와 꽤 오랜 시간 교류했다. 지금 생각해도 교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의 언행이 목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양심적이지 않았기에 단절했다. 방편이라고 하기에는 편하지 않은 방식으로 일들이 진행되었다. 또 생각하면 대순진리에서 상당히 높은 자리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니, 그 부처님 되리라 생각하고 수행하는 내가 그들이 권하는 도인보다 높지 싶다. 장난같은 말이기도 하지만, 진심이다. 불자는 부처가 될 사람들이다.)


인과를 따지면 오늘 내 입에 들어오는 고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거칠게 말하면 딱 내 입에 들어오는게 그의 과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흐름이라면 내가 고기를 먹는다한들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라. 정해진 인과의 굴레에 묶여 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도, 법을 배우는 나의 바램도 아니다. 우리는 그 굴레를 뛰어넘고 싶어 부처님을 부른다. 그렇다면 인과 속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 앞에 그의 과보로, 또 나와의 인연으로 생명잃은 살덩어리가 되어 누군가가 놓여졌을 때 적어도 한번쯤은 불성의 자비로 돌이키면 어떨까? 억지가 아닌 자연스런 불성의 발현으로 고기 먹는 일이 더 이상 즐거움이 되지 않을 때까지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 생명을 잃고 사람의 입에 들어갈 처지인 그의 공덕을 기려주고 고통과 번뇌를 떠나 다음 생에는 더 좋은 몸을 받아 부처님 법 배우라고 축원해주는 것을 어떨까?


누군가는 위선적이라고 언급하지만, 인연의 자리에서 부처의 자비를 조금이라도 되새기고 나누고 그것으로 삶을 밝히는 일을 어찌 위선이라 할까? 인과의 흐름에 부처의 자비를 입히라. 단지 따를 뿐이라면 그대 역시 인과의 흐름 속에 존재할 뿐이다. 흐름을 깨는 오늘의 마음씀과 언행이 그대를 인과에서 자유롭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