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관세음보살에게 귀명하면 탐진치를 벗어난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7. 1. 14:02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보면 관세음보살에게 귀명하면 탐진치를 벗어나게 된다고 나온다. 정말 그렇다고 믿는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이것은 내가 염불하면서 생각하는 바와도 통한다. 진리 안에 있다면 두루 두루 상통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래서 법화경 가르침과 서로 통하는 나의 생각을 스스로 바른 것에 가깝다고 여기고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알아질 날이 있겠지 한다.


예전에 어떤 글에서 보길 바보같은 아이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 절에 들어왔고 스님이 이 바보아이에게 관세음보살만 부르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 바보아이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스님의 말씀을 따라 앉으나 서나 관세음보살만 불렀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이 바보아이는 머리가 좋아졌는데 세상으로 나가 좋은 학교도 가고 결혼도 했다고 한다. 문리가 트였다는 지점에서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나 싶었는데 예상을 벗어난 모습이었으니 아마도 그 사람의 인연과 원이 그러한가보다 했었다.


부르면 온다. 오면 만난다. 만나면 물든다. 그런데 여기 한가지 더. 만약 내 안에 부르는 대상과 통하는 성질이 있다면? 부르면 온다. 오면 만난다. 만나면 물든다. 이 과정에서 그 힘이 증폭되지 않겠는가. 관세음보살에게 귀명하면 탐진치를 벗어난다는 글을 보고 에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 안의 불성이 드러나고 밖으로부터 물드는 엄청난 일이 되는데 어떻게 에이~하겠는가. 어느 순간이 되면서부터는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다. 다만 밖으로 보기에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데 여전히 탐진치에 매인 사람을 보면 답답하기도 안타깝기도 한다.


바보 아이도 부르기만 했는데 크게 변화했다. 그런데 우리라고 안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렇게 부르는데 아무 변화가 없다면 자신이 정말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마음을 담아 불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시간이 지나 무르익으면 불보살의 품성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며 탐진치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가끔 이 염불을 말하면서 집중만을 강조하며 그러니 관세음보살이든 사이다든 하나만 부르면 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집중함으로 우리 본성이 밝아지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다면 스스로 평생 사이다를 불러보면 될 일이다. 입으로 떠들기보다 실제 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불보살의 성품을 닮아 탐진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옳다고 인정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