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고민에서 벗어나다.
아침에 적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이미 거론한 적이 있는데 경험으로 확인하니 말하는 맛이 다를 것 같다. 그렇다고 전의 말이 머리로만 아는 것을 적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싱싱한 경험이라 해두자.
연초에 갑자기 네이버 카페에 어떤 이가 등장하여 내 글에 댓글을 달며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너가 뭔데 그리 잘난체를 하냐. 수행도 안됐으면서' 였다. '내가 빠른 이유는 법화경입니다' 글에 '왜 너가 빠르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물었다. 너는 왜 이리 교만하냐는 말, 그 동안 내가 꽤 비중있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고민하던 그 말을 나에게 던진 것이다.
처음 다음카페에서 그런 댓글을 만났을 때 정말 깊이 사유했었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스스로 완벽하게 속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완벽한 착각 속에 빠진 것은 아닐까에서 시작하여 표현의 문제일까, 아니면 벗어났지만 아직 그런 습기가 남아 묻어나는 것일까에 이르기까지. 내 기억으로는 한 3, 4차례 정도 됐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그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고민을 했었는데 작년 말에 개인 교류를 하자고 말했던 이와의 짧고 굵은 만남 속에서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렇게 믿었다.
물론 숨을 하루만 쉬는 것이 아니듯이 매일 매일 생활 속에서 바른 가르침을 새기고 그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하지만, 이제는 교만으로 비판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의 일이 발생한 것인데 정말 마음이 달랐다. 그것으로 고민이 되지도 않았고 편안했다. 단지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내 입장을 밝혀 오해(?)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었다.
환경에 움직인다면 아직 그 문제가 남아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환경이 움직이는데 마음이 편하다면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정말 내가 그 문제를 충분히 겪고 나와 자유로워진 것인지, 아니면 사실을 무시하고 나는 괜찮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외부의 평가, 깊은 사유를 통한 자체적인 평가, 두 가지를 잘 고려하여 답을 낸다면 안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외부 현상에 대해 유독 거슬리고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면 먼저 내가 그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 견고한 것인지 살피는 것이 좋다고 본다. 지금은 문제가 없지만 예전에는 문제있어 지금의 자리가 견고하지 않을 것일 수도 있고 지금 여전히 문제에 빠져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교만하다고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그런 문제가 없는지를 살피는 것이 좋다.
내 글을 읽고 '너나 잘하라'고 위에서 언급한 사람처럼 말하는 이가 있는데, 나로서는 적는 모든 글들이 배움과 경험을 통해 닿은 자리에서 하는 말일 때가 많고 여전히 미흡하기에 늘 스스로에게 새기는 말이며 내가 알아차린 바를 함께 나누기 위해 하는 말이다.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아는대로 살아가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알았다고 완벽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경지가 아니다. 그러하기에 알아차린 진실을 생활 속에 들여오기 위해 순간 순간 돌이키고 내가 말한 잣대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