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날이 너무 좋다. 몸살을 핑계로 꽤 오랫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래가 쉬지 않고 끓는다. 새끼 손가락에 작은 물집인듯 잡힌 염증이 가라앉을듯 하더니 허물을 벗고 다시 시작되었다. 인터넷을 중독인듯 가까이 하면서 많은 글을 적고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고 생각을 하고 그랬다. 크게 산란하지 않지만, 가끔은 기분나쁘기도 하고 소진되는 것이 아닌가 지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개천길을 따라 공원을 돌아 산책했다. 하늘이 시퍼렇다. 공기가 맑다. 생각이 이리 저리 떠돈다. 부처님을 부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좋다.
생각이 이어지다가 문득 그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비난하는 그사람. 늘 그의 논설이 이상했는데,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날선 표현을 하든, 욕설을 하든, 비아냥거리든 그것은 차지하고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누군가는 너무도 쉽게 만나는 부처님을 누군가는 스쳐지나지도 못한다. 누군가는 한번에 깊은 깨달음에 이르지만, 누군가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것처럼 지금까지 그가 얼마의 시간을 들이고 얼마나 많은 경전을 분석했든지간에 그것이 그에게 허락된 이해의 극치라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왜 그런 것이냐고 강한 어조로 말할 수 없다. 오해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오해하냐고 묻는 것도 무리다. 그것이 그 사람의 최선이니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너 잘난척하는구나.'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이 아니다. 나라고 다르겠는가. 내가 알게 되는 것,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나의 최선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각자의 최선 속에서 어떻게 하면 참된 이해와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옳으니 분별하는 일에 목숨걸기보다는 그것이 더 유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