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친구는 친구도 아니라는 말
요즘 내가 속한 시설에서 일일카페 티켓을 판매한다. 직원마다 티켓이 할당되니 지인들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좀 바쁜 것 같다. 취직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티켓파는 것이 찜찜했기에 애초에 나는 할당된 티켓을 구매해서 고마운 지인들에게 식사하러 오시라 권하리라 마음먹었었다(이름은 일일카페인데 차가 아니라 밥이 준비된다). 그런데 티켓판매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 아쉬운 말들이 오가는 것도 같아서 오늘은 그것을 잠깐 적어보려 한다.
누군가 그런다. '매년 하는 행사라 부탁하는 것도 그렇고 올해는 경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사주는 이가 없다.' 그 말에 다른 이가 그런다. '그런 친구는 친구도 아니다. 커피는 사서 잘 마시면서 만원짜리 티켓 하나 사주지 않는 친구는 다시 보이더라. 우리가 좋은 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런 사람이랑은 다시 얼굴보지 않는다.' 사실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카페 수익금은 장애우들을 위하여 사용이 되니 좋은 일에 동참하는 일이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돈을 생각하면 만원은 좋은 일에 부담없이 쓸만한 금액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의견에 수긍하면서도 불자인 나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다른 말이 하고 싶어진다.
먼저 돈을 수 억을 쌓아놓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돈이고 그것을 어찌 쓸까는 그 사람 선택에 달렸다. 나에게 쓰든 말든 좋은 일에 쓰든 말든 그것은 내가 말할 부분이 아니다. 물론 인과를 알고 있으니 좋은 일을 하게끔 알려주고 조언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강요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내비치는 결과에 섭섭할 수 있고 아쉬울 수 있고 때로는 어이없을 수 있겠지만 결과가 어떠하든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하면서 넘어가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사람이 지어가는 일이며 그 결과를 받는 이 역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상황이 닥치면 남을 탓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돈도 많고 잘 쓰는 이가 내가 하는 좋은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자체의 습성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은 대상이 나이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이라고 해도 내가 하는 일에 동참하고픈 마음이 일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탓할 대상이 나인가, 상대인가.
내가 선업을 지어왔고 어려운 시기를 만나 손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다면 그 누군가는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는 것이 당연한 인과의 흐름이다. 이렇듯 현상의 이면을 가늠하며 마주하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이가 불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친구는 친구도 아니다', 이 말에서 자유로운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내가 먼저 친구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날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