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꿈은 실체가 없는 꿈일 뿐이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5. 16. 20:27

꿈에 아버지가 나왔다는 누군가의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특별한 예지몽도 있지만 꿈은 의식의 반영이다. 꿈은 실체가 없는 꿈일 뿐이다.'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그 글에 여타의 의견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뭔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 글을 보는데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들었고 더 명확했다. 꿈을 많이 이야기하는 나를 고집하는 마음, 나의 생각을 고집하는 마음일까. 


특별히 다른 의견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꿈은 실체가 없다고 할 때 그럴수도 있지만 아닐수도 있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실체인가를 적자면 너무 이야기가 번질 것 같아서(또 명확하게 아는 것도 아니니) 꿈 이야기로 한정지어 보려 한다. 꿈은 의식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무의식이 반영되기도 한다. 사실 의식이 무의식으로 전환되기도 하는 것이니까 구분하는 것이 마땅치 않지만 말이다. 꿈은 현생에 대한 것일 수 있고 전생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나와 외부에 대하여 내 마음이 일으키는 꿈도 있고 외부의 작용으로 인해 일어나는 꿈도 있다.


꿈에 집착하면 안되지만 충분히 사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왜 그런 꿈인가를 생각한다고 답이 쉽게 나오지도 알아지지도 않겠지만 꿈을 꾼 이유를 모를 뿐이지 이유없는 꿈은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과 실체가 없는 것은 다르다. 꿈으로 나타나게 한 그 원인은 실체가 있다. 그러니 꿈을 그저 실체없다고 가볍게 여기는 것이 가끔은 중요한 메세지를 놓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지장경이나 법화경을 읽어보건대 그저 넘길 꿈도 있지만 의미를 새겨야 할 꿈도 분명 있다고 이해된다.


왜 아버지가 꿈에 나와서 '제사'라는 말을 했을까. 꿈을 꾼 이의 마음의 작용일 수 있다. 그 정도로 마음을 쓰고 있는 일이라는 말이니 자신의 어떤 마음이 그 꿈을 일으켰는지 다시 살피는 것이 좋다. 혹시 스스로 걱정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 속 깊이 찜찜하다 여기는 것은 아닌지. 또 아버지라 할 외부의 존재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함은 아닌지 말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일을 진행함에 탐진치를 떠난 마음, 상대를 위하는 자비의 마음에서 움직였는지 점검하는 것이 하나의 참고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이 꿈으로 인해 삶을 이리 저리 뒤집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집착과 무조건적인 신봉의 마음이 되면 마의 장애에 놀아나게 된다. 그러니 꿈을 모르겠다면 꿈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그 시간에 하루 하루를 반성하고 충실하게 선업지으며 살아가는 것이 낫다. 또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꿈의 의미가 조금씩 마음에 와닿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이런 마음을 스스로 속이고 있구나, 이런 측면이 있구나, 혹은 개꿈이구나 싶은 그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꿈은 실체가 없는가? 글쎄다. 그런데 꿈을 일으키는 원인은 분명 있다. 그걸 실체라고 하든 무어라 표현하든지간에 꿈을 통해 그 저변에 깔린 실상을 이해하는 것이 불자에게는 유익하다.  굳이 따지자면 모두 허상일 뿐인데 실체있는 그 무엇이 있을까. 또 이 말을 달리 하면 실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모두 허상이며 그대로 모두 실체다. 이리 적는 나도 잘은 모른다. 법화경 열심히 읽다보면 잘은 모르는데 말해지고 적어지는 순간이 온다. 점점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