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묘법연화경 연창에 대한 의문(1)(천태지자가 언급했다는 말세 만 년)
솔직히 나무묘법연화경 연창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없습니다. 그것은 충분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말 두서없이 주저리 떠들어보려 합니다. 꼭 나무묘법연화경 연창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의견에 대한 생각입니다. 의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죠.
먼저 천태지자의 말세 만년에 대한 언급에 대해서 적어보려 합니다.
법화경, 나무묘법연화경 연창을 입에 올리는 여러 사람들이 천태지자를 언급합니다. 말세에 자신이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고 하더군요. 이 말세의 만 년 동안은 나무묘법연화경 연창만 해도 성불한다, 뭐 그런 이야기 같습니다. 맞나요? 그래서 그 시절에 태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저는 먼저 천태지자의 그런 의견이 어디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 검색으로는 찾아지지 않더군요. 아주 열심히 찾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직접 읽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옹졸함일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최상의 경전인 법화경을 이미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경에서 답을 얻었는데 다시 다른 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의구심이 듭니다. 손에 이미 보배를 쥐었는데, 그 외의 것을 믿지 않는다고 어리석다고 하면 정말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출처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이 친히 최상의 법문, 최후의 법문이라고 찬탄하신 법화법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 평범한 불자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천태지자일진대 좋은 시절에 태어나지 못함을 한탄했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밝게 알고 보니 그런 시절이 도래하는데 나와는 인연이 없음을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말세 만년의 시기에 태어나기를 원했다면 인연이 그러하다고 한탄하기보다 죽을 정성을 다해 발원 기도함이 우선이지 않을까요? 결국은 자신이 정하고 원하는 대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리를 원했다면 그 자리에 합당하게 자신을 갖춰가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그것이 안된다면 자신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니 받아들이거나 넘어서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화경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불지혜는 그런 인연을 넘어선 곳에 있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정해진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