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말, 나를 돌아보다.
당신같은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대가리 빡빡 깍고 산으로 들어가심이. 생각해서 당신글에 답을 한 내 시간이 아깝다.
어제 누군가 잠시 내 글에 달은 댓글이다. 순간 삭제해버렸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면을 열어 곰곰히 생각하며 답글을 적고 있는 중이었다. 고기먹는 허물을 적은 것에 대해 트집잡는 모양새가 땡깡을 부리는 어린아이같다고 느껴졌다. 그리 말하면 마음이 편하냐, 어린아이같다는 내 말에 자제력을 잃은 것인지 어휘의 사용이나 문장이 상당히 감정적이었다. 순간 욱하는 마음의 표현이 스스로도 부담스러웠는지 (그 사람이 자주 하던 행동인데) 댓글을 조용히 삭제해버렸다. 하지만 지운다고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읽지 못했다고 해도 그의 마음과 언행은 법계에 오롯이 새겨져있다. 그의 허물이다. 그것을 안다면 가볍게 감정이 일어나는대로 악담을 하지는 않을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어제는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그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나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일방적이지 않다. 물론 정말 현격하게 일방적이라 물이 스며들지 않는 단단한 돌맹이에 물을 뿌리는 것 같은 그런 대화가 될 때도 있다. 그래도 대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상대방의 문제만을 바라보는 것이 왠지 마땅치 않다. 그 사람의 의도, 입장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맞을까? 내 주장만 펼치고 싶은 마음에 젖어있던 것은 아닐까?
글을 적는 것은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글에 댓글을 적고 답글을 적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가 제대로 이해하는가를 살펴야 하고 상대의 뜻이 무언인지 제대로 확인한 후에 적절하게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말하는 당신같은 사람들이 누구일까? 아마도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온 말로만 떠들어대는 위선적인 수행자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아마도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겠지만 말로만 떠들어대는 위선적인 자신일 수도 있다. 그것이 나든 그든 그 누구이든 그런 위선의 자리, 거짓의 자리를 벗어났으면 좋겠다.
바르게 아는 과정 위에 아는 것을 고민하여 삶에 들여오는 고귀한 행이 드리워져야 앎이 완성된다. 아는만큼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고 아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오물이 가득한 환경에 노출되었다고 깨끗함을 추구하는 마음마저 잃는다면 언제 깨끗함이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날이 올까?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게 어렵다고 체념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천만배는 유익하다.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나 그 끝은 정말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