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마장에 대해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2. 15. 21:58

누군가의 글을 보았다. 꿈에 고승이 나타나 다라니를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실제 존재하는 다라니라서 놀랐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 다라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었다. 이러하다 말할 것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지만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전에 카페에서 원효대사의 마장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신묘하다 여기고 정말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현상들을 마장의 범주에 넣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라니 꿈 이야기에 대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그런 글을 읽은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단정지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 있어 다른 이유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원효대사 마장에 대한 글을 보면 솔직히 어떤 현상을 만나고 나서 그것이 마장인지, 참다운 불보살의 가르침인지 알기 어려운 순간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얘기를 하자면 꿈에 일어나는 경계를 의미있게 바라보고 사람들에 대해 드는 생각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완전히 마장에 휘둘릴 그런 타입이다. 그런데 또 생각하기에 마장이든 무엇이든 내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꿈에 일어나는 현상이 마장이든 불보살의 가르침이든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어떠한지를 알아차리는 것,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가를 알아차리는 것, 내가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것에 바탕을 둔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과 노력이 아무리 마장이 치성할지라도 그 장애로 인해 주저앉지 않게 나를 이끄리라 믿고 있다.


그 사람처럼 꿈에 누군가 나에게 다라니를 알려준다면 어떨까. 신기한 생각이 들 것 같다. 그 다라니를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 것 같다. 그런데 이미 나는 수행을 하고 있다. 법화경을 읽고 아미타불을 하고 능엄주를 읽는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라도 통할 정도로 수행하면 되는 일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착각일 수 있지만 불법은 결국 하나이지 않은가. 그러니 다라니 알려준 그 대상에 대해 감사함, 지금 하고 있는 수행으로 내 삶과 마주하는 세상을 밝히도록 노력하겠노라는 다짐을 전할 것이다. 나의 수행공덕으로 당신 또한 더 편안해지기를 바란다고 기원할 것이다. 그리고 불보살님(내 안의 불성)에게 청할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기도와 수행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라면 부처님이 알려주시라,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인연된 가르침으로 수행을 잘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라고 말이다. 


꿈에 어떤 경계를 만났다고 하자. 내용에 따라 신기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의 중심없이 이리 저리 휘둘린다면 수행에 얼마나 이로울지 잘 모르겠다. 한번쯤은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불법을 향한 내 뜻을 견고히 하고 나와 세상의 유익을 위해 그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 실천하려는 노력이 결국은 마를 떠나게 한다는 것이다. 마는 마의 일을 하고 우리는 불자로서 불자의 일을 하면 된다. 마라 하든 불보살의 가르침이라 하든 참된 불자의 일에 마음을 두는 이에게는 그 모두가 수행의 방편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경을 읽고 염불을 하고 다라니를 하는데 남 다라니 꿈에 무슨 토를 다는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가면서 스스로 중심을 잡아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 여러가지 경계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현상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어찌되었든 마장,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