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지 않고 나아감
누군가 만나고 어떤 일을 겪게 되었을 때, 내 깊은 업장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내 삶을 힘들게 만들어버린 과거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들, 부처님 법을 배워나가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건가 싶은 짙은 당황스러움과 절망감이 잠시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선의, 욕망, 어리석음의 혼재 속에서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부처님을 잊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명확하게 악연이었지만, 나의 업이, 상대의 번뇌가 사라지기를, 어둠의 고리를 끊고 선한 인연으로 마주보기를 발원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의 문제, 상대의 문제가 여러 조건을 통해 만나 오늘을 함께 나아가도록 했던 것 같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더 이상 똑같지 않다. 나는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어지러워지기만 했던 고통의 매듭을 조금씩 풀어나가고 있다.
몇개월 전에 쓰던 글이다. 잊고 있었는데, 임시저장글들을 정리하면서 읽게 되었다.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도 없는 윤회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죄업을 반복했겠으며 그 습의 골이 얼마나 깊었겠는가? 한번에 먼지처럼 흩어져 말끔하게 없어져버리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수행이 그런 것 같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저점을 점점 높여가는 것.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방심하는 순간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 좌절하지만, 좌절의 그늘은 점점 더 헤어나오기 쉬워진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완전히 벗어날 날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삶은 고뇌의 연속이다. 좋지 않은 상황은 여전히 펼쳐진다. 하지만 내가 변하고 있기에 모든 것이 변한다. 늘 걸리던 함정도 이제는 함정인 줄 알아 피하기도 하고 가끔은 함정될 조건이 없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부처님 법을 배우면서 나는 머무르지 않고 나아간다. 나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