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무서운 꿈을 꾸고 나서

향광장엄주주모니 2022. 1. 13. 09:56

1. 꿈의 종류

꿈의 종류는 다양하다. 미래를 보여주는 꿈이 있는가 하면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꿈이 있고 낮동안의 경험이나 실시간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는 꿈이 있다. 누군가는 단지 쓰레기 같은 정보들이 정리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보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수용하는 편이다. 어찌 되었든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깊은 내면을 드러낸다고 판단될 때가 많기 때문에 꿈의 모습을 잘 살펴 그 속에 숨어있는 스토리를 찾아 나를 이해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단서로 활용할 때가 많으며 그것은 삶에 꽤 유용한 편이다. 무엇이 되었든 약으로 활용하면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2. 나의 아침

오늘은 5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소리를 듣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직 5시는 1년간 게을렀던 내 몸과 마음에 저항이 상당한 시간대이다. 일주일 전 시작한 만보 걷기의 피로감인지, 낮 시간에 졸리기도 하니 이를 핑계 삼아 몸을 더 눕히자 했는데 그새 꿈을 꾸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너무 두려움이 생생하여 실제로 흐느끼다가 잠을 깼다. 실로 오랜만이다.

 

3. 꿈 이야기

꿈속에서 나는 변호사의 아내였다. 남편은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우리는 사무실을 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피곤하고 화가 난 상태로 사무실 문을 세차게 열자 남편과 그의 직원들 15~20명 정도가 둥글게 앉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주말인데 아무 성과 없이 회의 중이었고 쉴 공간이 필요한 나는 속으로 '호텔방이라도 얻어주든지'라고 생각하면서 남편에게 화를 냈다. 그 화는 곧 '오래 일하면 오히려 성과가 떨어지니 일단 오늘은 마치고 다시 일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라는 제법 그럴듯한 설득으로 이어졌다. 순간 나무아미타불 염불 소리가 작게 들렸는데(요즘 염불을 틀어놓고 잠을 잔다) 사람들이 다 자기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인지 확인하다가 내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자신들의 사장을 설득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호의적이 되었는데 나의 설득은 업무 성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일하는데 과연 그런 성과가 있는가'라는 논리의 전개에서 나온 이야기였던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소송에 이겨 본 사람이 있느냐'는 내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슬픈 일이었다. '그럼 소송에 이길 자신이 있는 사람(?), 그런 노력을 한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그 누구 하나 손을 들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떤 이가 날카로운 회칼 2자루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자신을 00동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남편에게 원한이 있어 복수를 하기 위해서 온 사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도망갔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되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잖아.'라고 하면서 빈정거렸다. 그의 부하인지 한 사람이 커다란 식칼 한 자루를 더 가져다주고 사라졌는데 '그것으로 사람을 잘라 죽이려나 보다' 싶어졌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때 남편의 딸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된 남편은 '차라리 나를 죽이라'는 말을 하고 의자에 누워있었고, 나는 무서운 사람을 향해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제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사죄했다. 아미타불 염불 소리가 여전히 들리고 있었고 그는 그 소리를 따라 읊조렸으나 그의 기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울면서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의 두 손을 잡아 탁자에 올리고 양 엄지손가락 부분을 자르겠다고 말했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여 나는 손을 잡아 뺐고 그가 다시 손을 잡아 올렸다. 그런 실랑이를 두어 차례 반복했는데 순간 많은 고민을 했다. '이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끝나는 것일까? 그냥 자르라고 그대로 있을까. 아니, 너무 두렵다. 그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내가 순순히 따르는 모습을 보이면 그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꿈의 상황이 너무 생생하여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커다란 산 같았고 두려움에 흐느끼며 꿈에서 깨어났다.

 

4 꿈을 깨고 나서

꿈을 깨고 나서 '이게 뭘까'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잠시 거치면서 명확한 세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 번째는 모두 다 자기 업대로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의 남편이었고 아버지인 사람도, 그에게 원한을 품고 나타난 무서운 사람도, 성과도 열정도 없이 시간을 축내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회사 사람들도 모두 다 불쌍한 존재일 뿐이지 않은가. 그가 지어온 결과대로 살아갈 뿐이다. 나와 남편의 인연은 아버지와 딸로서 이어졌고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과거 행위는 그 값을 치러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되갚음의 순간에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내가 개입하게 되었다. 또 회사 사람들은 어떠한가. 외면적으로 변호사이며 주말에도 회의를 하고 있으니 나무랄 데 없이 성실하고 반듯해 보인다. 그런데 까놓고 보면 속살이 없는 빈 껍데기 같다.

두 번째, 좋은 변화(발전)를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선택을 하고 선택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딸로서 내가 내리는 결정과 행동, 그 개입의 방향은 많은 것을 바꿨을 것이다. '만약 내가 손을 그대로 내어주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한데, 현실과 같은 생생한 꿈이라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이 부분은 아직 잘 모르겠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것도 명확하지 않으며 아직은 내가 육신의 고통을 넘어설만한 마음의 힘이 없다. 그 정도의 힘이 갖춰지면 고민하더라도 손을 내어줄지도... 남편의 회사 사람들은 어제 내가 만나고 온 조직을 떠오르게 한다. 겉으로 보면 모자람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보이지만, 결국 오랫동안 발전하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도는 것은 결국 겉으로 드러내는 만큼의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 역시 그 지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그럴듯해 보이는 말과 행동을 싫어할 뿐이지 이런 상황에 함께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 번째는 나의 수행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수행을 다시 가다듬으면서 독경, 염불, 진언을 하고 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마음을 놓고 있는데 이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인지 이렇게 느낄만한 꿈을 여려 차례 꾸고 있다. '지금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 같으니,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염불해도 행위에 담긴 원, 집중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스스로에게나 주변에 유익함을 전할 수 없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물론 어찌 유익함이 없을 수 있겠냐만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수행심이 청정하고 진실하고 성실하다면 염불 하나에도 밝아짐이 있을 것이니 정신 산란한 독경과 염불에 뭇 유정 무정의 존재들이 얼마나 애가 탈 것인가.  

 

5. 마무리

꿈을 꾸고 기억한다면 꿈을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다.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전혀 없으니 집착하는 마음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삶을 무겁게 만든다. 다만 자신과 상황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내 무의식이 무엇을 보이려는가, 무엇을 알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꿈은 충분히 유익한 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