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뭔가 참 잘못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2. 9. 12:58

바탕없이 이리 저리 말을 갖다 붙인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씁쓸하다. 물론 경을 읽고 사유하여 알아진 것이라면 좋겠다만 나무묘법연화경만 연창하는 것이 최고요 경은 법사만 읽어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아래 있는 기도이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공왕불기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전에도 조금 적었는데 오늘 다른 것을 알게 되어 함께 적어보려 한다.


1. 그들은 염불하는 것이 지나간 수행이라고 효과없다고 주장했다. 가르침이 그러하다. 그런 주장에 대해 한번은 내가 '나무묘법연화경 연창하는 것이 공왕불을 부르는 것이면 염불아닌가'라고 반문하는 글을 쓴 일이 있다. 그것이 맞다면 자신들의 주장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 수순아닐까. 그런데 어느날인가 글을 보니 한 어떤 기도자가 이렇게 적고 있었다. '명품 염불, 공왕불기도' 맹목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2. 공왕불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을 때 공왕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 일이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이 배우고 아는대로 적길 '그것이 대우주며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행시에 부른, 의지한(?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수행하듯) 부처님'이라고 했다. 그 글에 대해 나는 공왕불이라는 명칭을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에서 보았다고 했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지나 어떤 기도자가 기도 소개를 하면서 '수학무학인기품에 숨겨져있는 공왕부처님 기도'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찝찝했다. 내 글을 잘못 활용하는 것 같아서. 공왕불 기도는 경에 숨겨져있다? 정말 오래 깊이 읽었을까.  


바탕이 무엇인가. 기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나의 글을 기도 소개에 활용하는 것은 많이 이상하다. 왜냐하면 나의 글들은 기도의 주장과 대치되는 구도 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며 법화경 독경을 통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주장하고 가르치던 이는 생을 달리했고 그 이후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얼핏 보니 대상에 대한 찬탄은 여전한 것 같으니 바뀐 것을 없을 것이다. 그 가르침이 그대로일테니 기도에 의구심을 품은 나의 글이 기도 주장에 쓰인다면 많이 이상한 일 아닌가.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그 열심의 대상은 부처님의 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여 찾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 고민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안정되게 하고 다른 이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에 다른 색을 입히는 것을 무어라 할 수 없지만, 그 색을 입힘이 바른 가르침을 훼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차라리 게으름의 업과를 받는 것이 더 낫다. 그렇게 배웠다고 생각한다. 왜 법이 귀한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법으로 인해 시작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법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불보살의 이끄심을 발원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