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래 세상에 경전과 도가 모두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무량수경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2. 17. 11:33

말세에 다른 경전이 힘을 잃는다고 하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법화경에 나오듯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들은 정법입니다. 방편으로 설하셨을지라도 그 안에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언사, 분별, 논의, 인연, 비유, 본지, 해석은 진실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생의 근기를 따른 것일 뿐이라고 누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법이 끊임없이 이어져 결국은 일불승의 진실로 들어가게 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설하신 법과 인연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한번 그 흐름을 타게 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법의 흐름을 타고 결국 일불승의 진실에 닿게 될테니 말입니다.


하나의 목적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에 바로 닿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사람들의 근기가 더 좋지 않아진 때(말세의 특징은 많은 중생이 불법에 관심이 없고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근기가 됩니다)에 그 방법들은 다 부인해버리면 그것에 바로 닿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부인하는 것과 같아집니다. 잘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에 비추어 뭔가 이상한 논리같다.'


이리 말해도 명확하지 않고 개인의 의견일 뿐이니, 경전을 들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번에 한번 언급했지만 너무 긴 글이라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무량수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 중생들을 위해 이 경을 설하고 무량수불과 그 국토에 있는 모든 것을 보게 하였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모두 왕생을 구해야 하느니라. 내가 열반에 든 후에 다시 의혹을 일으켜서는 아니되느니라. 미래 세상에 경전과 도가 모두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나는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중생들을 애민히 여겨서 특별히 이 경전만은 백 년 동안을 더 머물게 할 것이니라.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만난다면 뜻하는 대로 모두 다 얻을 수 있느니라.'


모든 경전과 도가 사라진 시대를 언급합니다. 그것도 꼭 그럴거야가 아니라 '없어진다고 할지라도'라고 하지요. 아무튼 그 때 부처님은 다른 것이 아닌 이 무량수경을 자비로 남긴다고 하셨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특별히 이 경전만은 백 년 동안을 더 머물게 한다고 말입니다. 정토삼부경을 읽으면서 절절히 깨달은 것은 부처님들의 자비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무엇이든 중생이 부처님 법에 들어 편안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펼치고 계십니다. 나, 너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 부처님, 저 부처님을 가리지 않습니다. 


설령 법화경이 진실을 말하는 경일지라도 부처님은 이 경만이 진실이니 이것을 믿지 않는 이는 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경의 진실에 마음이 닿도록 중생 하나 하나의 근기를 살펴 그 사람이 받아들일 법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부처님 경지는 아니지만 부처님을 믿고 따른다면 부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그 뜻대로 가는 길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음에 일불승의 참된 진리를 품고 사람들을 불법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니면 희망이 없다고 마음에 시비 분별을 조장함은 얼마나 불성에 가까울까요? 


솔직히 잘모릅니다. 아직 불지혜에 달한 것이 아니니 어찌 법을 안다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겁니다. 이 경전이든 저 경전이든 경전을 읽어 부처님에 가까워진다면 모두가 다 공덕없다 해도 읽는 이는 공덕 안에 있습니다. 이 부처님, 저 부처님, 이 보살님, 저 보살님을 불러 불성에 점차 가까워진다면 모두가 다 공덕없다 해도 부르는 이는 그 불보살님의 현신과 늘 함께 합니다. 


아직 경전이 남아있고 아직 불보살님에 대한 믿음과 찬탄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따르는 불심이 남아있습니다. 불자가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그 자리가 바로 모든 불보살님과 선신이 기뻐하는 도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