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맑고 편안한 것에 대해
카페에 언제부터인지 편안한 날, 밝은 날, 좋은 날이 되시라 축원의 댓글을 적고 있는데 말 한마디, 마음 한 자락을 상대의 그러한 날에 보태고 싶어서입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생각이, 태도가, 마음이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그런 변화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적는 이유는 오늘 적으려는 글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서 밝고 맑고 편안한 것에 대해 많이 언급합니다. 경을 읽고 실제 살아가면서 그렇게 되어야 함을 알게 되고 그렇게 되고 있음을 조금씩 느끼게 되어서라 생각합니다. 무언가 부처님 가르침을 안다고 하면서 편안하지 않은 마음이라면 이렇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아마도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든 그것을 펼친 누군가의 가르침이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머리로만 아는 것이구나. 왜냐하면 부처님의 법은 편안해지는 법이고 자유로워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밝아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만족이 되고 충분하게 채워진 이는 그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진짜 부자는 돈에 대해 걸림이 없습니다. 그냥 있으니까요.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부처님 법도 그렇다 생각합니다. 내가 정말 온전히 만족되고 밝아졌다면 밝음을 이야기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그 자체니까요. 그것으로 전혀 제약을 받지 않고 거기에 생각이 머물지도 않을 겁니다. 완전하게 자유로워지는 거겠지요.
제가 밝음을 맑음을 편안함을 말하는 것은 이제 그것을 알았고 이제 조금 맛보았기 때문에 즐겁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네, 아직 갈길이 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만약 이런 저를 두고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그건 당신 역시 그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맑음, 밝음, 편안함을 말하는 나를 향한 그 생각을 자신에게 온전히 돌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편안한가를 묻는 댓글을 적은 분이 있는데 네, 편안합니다. 편안하지 않은 순간에는 그것을 통해 편안함에 이르는 공부를 합니다. 부처님과 함께 하는 공부가, 수행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가는 자에게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고 나무라는 자는 자신 역시 제대로 길을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리 미흡한 저조차 조금 읽은 경전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는데 많이 공부한 당신은 왜 그런 것일까요. 공부가 문제입니까. 사람이 문제입니까. 둘 다의 문제입니까.
자비는 결국 밖으로 향하고 바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되는 공부가 우리가 배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불법입니다. 미흡한 제가 닿은 이 공부가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당신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편안하고 밝고 맑아지기를 바랍니다. 불성의 지혜와 자비가 흐르는 날 되기 바랍니다.
지울 댓글에 고민하는 분이 있을 듯 하여 이 글은 댓글을 제한하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