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 무엇을 위함인가
몇일전 카페에 방생에 대한 상담글이 올라왔다.
글을 읽자 마자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질문의 직접적인 답이 아닐뿐더러 듣기 좋은 말이 아닐 것이기에 그냥 있었다.
날이 지나도 아무도 답하지 않기에 내가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어조를 조심했고 나름 최선이었는데 동조하는 글이 아니니 기분나빠할 가능성이 컸다. (예상은 적중한 것 같다.)
최초의 질문은 '물고기 취급하는 좋은 불자 사장님 연락처를 달라'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어찌되었든 '방생은 좋은 것이고 그런 사장님 원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쁜 비불자 사장님 밑에 있는 물고기를 방생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방생은 자비니 말이다. 또 살리는데 분별하는 것도 불성의 자비에서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글을 달았다.
다시 답글이 달렸다. '좋은 사장님한테 하니 효과가 있었는데 사람을 바꾸니 효과가 없었다. 물건 살 때 좋은 분과 거래하고 싶은 것과 같은 일이다. 또 나는 아직 분별심이 있는 중생이다. 좋은 말 감사히 듣겠다'고 했다. 글의 결이 곱지 않았다.
어떤 이가 그 사장님 연락처를 물으니 답을 해주면서 덧붙이길 '사장님이 아주 좋은데 전화하고 돈 보내면 정성껏 해주신다'고 했다.
'효과가 있다, 없다'를 읽을 때 이미 마음에 걸림이 있었는데, '전화하고 돈보내면 잘해준다'는 어떤 만족감을 풍기는 그 구절을 보며 "오, 마이 갓!" 했다.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말을 해본들 지금은 마음에 닿기보다는 기분나빠하겠지. 오히려 반감만 키우겠지. 그래서 '그런가. 모든 일이 좋게 회향되기 바란다'고 했고 그 사람은 '감사하다'며 마무리가 되었다.
어떤 모습이든 방생은 좋은 것이다. 사람을 살리든 돈으로 물고기를 사서 풀어주든 모든 종류의 살리는 일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방생의 모습이, 저런 생각과 마음으로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부처님 법을 만나고 받아지닌 것은 철처히 나의 안락을 위해서였다. 모두가 그러지 않을까. 거기에는 별 의심도 이견도 없다.
방생을 처음 할 때 우리는 병이 없어지고 오래 사는 공덕에 대해 듣는다. 귀가 솔깃해진다. 더욱이 몸이 아픈 사람이라도 주변에 있다면 더 마음에 깊이 들어박힌다. 그런 희망과 원을 갖고 방생에 참여하게 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생은 철저히 자비여야 한다. 효과를 언급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어야 한다. 또 효과가 없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살펴 더욱 한마음으로 매진할 일이지, 사장님이 좋은지 나쁜지 밖의 조건을 따져 분별할 일이 더욱 아니다.
나쁜 사장, 비불자 사장을 돕게 되는 상황이 싫고 좋은 분을 돕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글쎄... 방생의 인연짓는 그 공덕으로 나쁘고 비불자인 그 사람의 인생이 밝아지기를 축원해줄 수 도 있다. 당신 아니더라도 좋은 사장님 밑에 있는 물고기들은 이미 좋은 인연으로 나가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진짜 공경할 정도의 불심을 갖춘 자라면 살아있는 물고기를 취급하는 그 일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방생보다는 먹거리로 많이 팔린다는 것을 뻔히 알진대 여기서 자비를 말하고 효과를 말하면 좀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방생에서 출발한 일련의 생각은 기도에 미쳤다. 이런 마음이 어디 방생에 그칠까? 기도를 한 효과에도 이런 마음을 쓰기 쉬울 것이다. 이 기도는 좋고 저 기도는 나쁘고. 세상 어디에도 좋은 기도 나쁜 기도는 없다. 좋은 기도자 나쁜 기도자가 있을 뿐이다. 아직 충분하지 않은 기도 충분한 기도가 있을 뿐이다.
그 사람과 글을 나누니 이상함과 답답함이 들었다. 비난처럼 글이 써졌지만 비난보다는 그런 마음에서 한발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과정일 뿐이니 변화할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방생에 대해서 댓가를 바라기 보다 자비로 행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당장 효과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자비가 쌓이진대 편안하지 않을 리가 없다. 법계가 그의 자비를 온통 기뻐할 것임이 자명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