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배운대로 살아가라.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7. 19. 17:32

교학적인 모습을 벗어나는 것이 불자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중요하다. 자비와 지혜를 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란하게 이야기하는 자신의 마음과 언행이 정말 그 자비와 지혜에 가까운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불교 카페에서 만난 이들, 그 중에서 많은 지식을 내보인 이들 중 그 지식에 합치되는 마음, 언행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법화경을 말하지만 이것만 옳고 다른 것은 다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자신이 아는 것만이 온전한듯이 답을 정해두고 그것을 벗어나는 이에 대해 참아내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바르게 마주할 역량이 갖춰진 것도 아닌데 좋지 않아서 피했던 인연을 굳이 찾아와 과거와 다름없이 분란을 조장하고 상대를 곤란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듯이 살아가는 이도 있었다. 그 과정의 언행들에서는 그다지 부처님도, 진실함도 느낄 수가 없었다. 포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교묘하게 숨겨도 결국 그 사람이 드러난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다른 이가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논리, 확신에 견고하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무어라 하든 다 자기근기만큼일 뿐이다. 이것을 인정하는가. 그렇다면 자신 근기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고 상대 근기만큼의 법 이해도 인정해야 한다. 또 한가지 공통점은 먼저 나의 글에 이런 저런 댓글을 달아 답을 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이야기에 관심갖게 만들고 나서 그 이후를 참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카페에서 만난 우리에게 배운대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적용하면 어떤 모습일까. 법에 대한 이해가 상이할 수 있으니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 공개된 장소에 글을 자유로이 올린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독자의 자유로운 반응도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누군가 다른 의견을 적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근본의 마음과 과정이 불자로서 합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운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다른 의견을 말하더라도 상대를 향한 자비를 벗어나면 안된다. 또한 그것이 상대에 대한 비난, 조롱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입으로는 염불하면서 마음에 온갖 더러움을 담고 있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배운대로 살아가라. 입으로 전하는 지식보다 마음으로 몸으로 전해지는 것이 더 큰 감동을 가져오며 힘을 지닌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언급했듯이 말로만 현란하게 불법을 이야기하는 실로 교학적인 그럴듯한 불자보다 지장경 하나를 꾸준히 읽어오신 어머니를 더 불자로서 존경하고 부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많이 알면 뭐할까. 실천하지 못한다면. 또 정말 알기는 할까. 정말 안다면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기 어렵다고 본다.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할테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부지런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신을 내세우고 원대로 되지 않으면 습관처럼 굳어버린 방식으로 상대를 조롱하기도 하고 무리지어 헐뜯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습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남탓만 하면서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밖으로 쏟아버리는 온갖 비난의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좋다. 남인듯 적용하면 자신을 알아차리는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남말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이켜서 살피지 않았다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자신을 살피는 것이 좋다. 결국 나의 문제가 중요하지, 남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며 남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위시한 다른 이들을 위한다는 목적 아래에서나 의미를 갖는다. 이리 적지만 미묘하며 쉬운 일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많은 선지식이 언급하듯이 불법의 핵심은 실천에 있다. 그러니 알았다면 힘써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앎과 실천이 쌓이다보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움직이는 마음과 행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오늘은 교학적인 나를 떠나 실천하는 나를 지어가는 날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