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법화경, 종자 찾기.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 12. 16:18

먼저 글 읽기전 주의경보 발령. 개인 생각이다. 이런 나의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나도 모른다. 너무 무책임한가. 지금 나로서는 이것이 정답인데 다른 이에게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법을 이해함이 순간 순간 달라질 수 있는데 너무 힘써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참고만.


법화경을 읽는 어떤 분이 '너의 종자를 찾아내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종자가 무엇이며 어떻게 찾을지를 문의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그건 다른 이를 통해 찾기를 바라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답을 하긴 했는데 오늘은 그 답에 대한 글이라기 보다는 법화경 수지독송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적어보려 한다.


가끔 법화경 공부자의 어떤 글을 읽으면 자신이 받은 가피에 대한 이야기, 생활하면서 일들이 잘 풀린 이야기, 원하는 바가 성취된 이야기, 신묘한 현상이 일어난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을 본다. 다라니를 소원성취하는 주문처럼 받들기도 하는 것 같다. 일단 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넘어가겠다. 그런데 어제도 오늘도 그런 모습에 머물러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우리가 읽는 것이 법화경이니까.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참뜻을 밝힌 경전, 불지혜를 밝힌 경전 아닌가. 모든 부처님은 중생이 부처되기를 원해 세상에 출현하며 부처님, 불성은 상주 불멸하다는 것을 밝힌 경전이 법화경이다. 최후의 가르침,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법계에 가득한 부처님은 불자가 그 참뜻을 받아지니고 알리는 것을 귀히 여기고 기뻐하신다.


글을 올린 분은 이미 법화경 100독을 넘기며 많은 업장이 소멸되고 마음의 변화를 맞이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제 종자를 찾아내라는 음성을 들었다면 지금 머물러 있는 그 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 더 나아갈 바가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부처님은 법화경을 통해 부처님의 참뜻을 알아차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참뜻에 마음이 닿으면 내 안에 불성이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부처님의 자녀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법을 이어받은 자녀, 내 안에 불성의 씨앗을 가진 자녀. 종자가 찾아진다.


그 분의 질문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법화경 수지독송에 대해 가져왔던 의문, 너무 가피를 앞세우는 전법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살짝 다른 이야기인데 예전에 어떤 글에서 보았다. 법화경 천독인가 하신 분이 계셨다고 한다. 꿈에 누군가가(아마 부처님이) 말하길 왜 밥이 다 되었는데 가만히 있냐고 하셨단다.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비슷할 것이다. 독송자가 말하길 이제 법화경을 배워 펼쳐야 하는데 왜 법을 펼치지 않냐는 부처님의 하문이었는데 자신은 아직 표현할 자신이 없어 경전만 보시한다고 했단다. 크게 보면 종자를 찾으라는 말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모습이 충분하지 않으니 법화경이 전하는 참뜻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해나가라는 가르침 아닐까.


법화경을 읽으면 부처님의 뜻을 알게 된다.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든 이가 부처될 존귀한 자이며 불성이 우리 안에 존재하고 불성이 영원불멸하여 늘 나와 함께 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귀한 가르침을 펼치는 것을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심에 마음이 닿게 된다(법을 펼치는것, 그것이 부처님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까지 표현하셨다). 부처님의 뜻은 업장을 소멸하고 가피를 받아 현생의 삶이 안락한 것보다 깊고 크다. 업장 소멸도, 편안한 현생의 삶도 귀한 것이며 불법을 닦아가는 이가 얻는 복이지만 법화경은 그보다 깊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니 법화경을 배우는 그대는, 나는 부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기를 발원하며 법화경을 읽어나가야 한다.


종자를 불성으로 보니 선을 말하는 분도 견성을 말하는 분도 있다.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렇게 선방에 앉듯이 참선에 들지 않아도 불성을 볼 수 있다고 본다. 내 경험이다. 예전에 어느 순간 너무 불성이 궁금했었다. 도대체 무엇인가 궁금해하며 이리 저리 찾았던 것 같다. 답이 될만한 법문도 읽었고 홍익학당의 윤홍식씨 강의도 들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불성, 견성에 다가가는 것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불성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 아는지 모르는지 묻는다면 안다고도 하고 모른다고도 할 것 같다.


너무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우리가 법화경에서 배우는 법은 사량과 분별을 뛰어넘으며 부처님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으니. 불성은 그런 것이니. 그냥 알아차리는 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말로 정확히 옮길수도 없다. 너는 아는가 묻는다면 글쎄요 할 것이다.


법화경을 읽는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