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안락행품, 법사가 갖추어야 할 품성 중 하나를 적어봅니다.
안락행품에서 말세말법시에 이 법화경을 홍포하고 싶은 보살마하살에게 4가지 성품을 갖추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법화경 읽은 이는 잘 알겁니다. 다른 사견을 하나 붙이지 말고 그냥 경전에서 부처님이 무엇을 말하셨는지 적어보겠습니다. 4가지 성품 중 세 번째의 성품을 말할 때 이렇게 설하십니다.
먼저 산스크리트어를 영어로 번역한 케른의 경을 산스크리트 원본과 대조하여 원문에 가깝게 국역했다는 법화경입니다.
다시 문수사리여 여래가 멸도한 후 정법이 쇠멸하는 말세를 사는 보살마하살로서 이 경을 지니는 이는 질투하지 않고 거짓되지 않고 속이지 않나니 보살승에 오른 다른 이들을 가벼이 여기고 꾸짖어 무안을 주지 말지니라. 또한 다른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과 성문승에 오른 일들과 벽지불승에 오른 이들과 보살승에 오른 이들의 단점을 찾지 말지니라. 또 이런 말을 하지 말지니 즉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상정등각에서 심히 머나니 그대들은 행실이 변덕스러워 능히 참지혜를 얻지 못하리라 하지 말지니 이처럼 보살승에 오른 이들의 단점을 찾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한 법에 관한 논쟁을 즐기지 말지며 법에 관한 논쟁에 참여하지도 말지니라. 일체 중생을 위한 자비력을 결코 버리지 말지며 일체 여래들을 자신의 아버지들로 여기고 일체 보살들을 자신의 스승들이라 여길지며 또 시방의 보살마하살들을 부지런히 성심껏 공경하여 받들지니라. 설법할 때에는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법을 설할지며 어떤 법일지라도 편애함이 없어야 하나니 깊이 법을 사랑하는 탓일지라도 어떤 법을 다른 법에 비해 총애하지 말지니라.
다음은 한자를 국역한 천태불교문화연구원의 법화경입니다. 구마라집의 한역본을 국역했다 생각하지만 정확히 모르겠네요.
또 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로서 훗날 말세에 법이 멸하려고 할 때, 이 경전을 받아 지녀 독송하는 이는 질투와 아첨과 속이려는 생각을 품지 말고, 불도 배우는 이를 가벼이 여겨 욕하거나 그의 잘잘못을 찾지 말라.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로서 성문을 구하는 이와 벽지불을 구하는 이와 보살도를 구하는 이를 뇌란케 하여, 그로 하여금 의혹케 하고 후회하게 하면서 그 사람에게 말하되, '너희는 도에서 거리가 매우 멀어 끝내 일체종지를 얻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너희는 방일한 사람이어서 도 닦는데 게으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마라.
또 모든 법을 희론하여 말다툼하는 일이 없게 하라.
마땅히 일체 중생에게는 대비상(大悲想)을 일으키고, 모든 여래께는 자부(慈父)라는 생각을 일으키며, 모든 보살에게는 큰 스승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시방의 모든 대보살들에게는 항상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예경할지니라.
일체 중생에게 평등하게 설법하되, 법에 따라서 많이도 하지 말고 적게도 하지 말며, 나아가 법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라도 더 많이 설하는 일이 없도록 할지니라.
저는 한역본을 국역한 경전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영역본을 국역한 경전을 읽고 있습니다. 물론 두 가지가 동시에 다 기억나지 않지만 제 기억이 허락하는 한 같은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의 사소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공통되게 흐르는 것이 있어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따라가는데에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적어보자면 굳이 나의 이해를 말하지 않더라도 경전을 그대로 읽는 것 만으로도 부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드러난 뜻에 한하겠지만요. 깊이있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까지 닿지 않더라도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라는 것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경에서 부처님은 분명하게 이런 태도를 지니라고 당부하십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로서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에 오른 이들에게, 다시 말해 갖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불도를 배우는 이에게 '너희들은 무상정등각에 이르지 못할거야(너희들은 성불하지 못할거야).'라고 말하지 말라 하시지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부처님의 당부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붙인다면 개인의 이해이므로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또 부처님은 모든 부처님을 자비로운 아버지로 생각하고 모든 보살들을 큰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시방의 보살마하살들을 공경하라고 당부하십니다. 하나의 부처님, 하나의 보살만을 믿고 따르라는 말과는 다른 말입니다. 지금 그런 마음으로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들을 바라보고 시방의 보살마하살들을 공경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의견 또한 개인의 이해가 될 것이므로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통해 전하시는 말씀은 결국 듣고 받아지니는 우리에게 전하시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각인각색이니 다 같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법화경을 1년 넘게 읽으면서 늘 환희심에 가득찼지만 그저 혼자만 읽고 혼자 착각하여 기뻐하는 것인가로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법은 평등하게 설해지지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법이 설해지는 이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안락행품의 4가지 성품은 우리가 비록 보살마하살같은 그런 근기에 있지 않을지라도 법을 받아지닌 자로서 따르고 갖추어야 하는 품성입니다.
본문에 이어진 게송들을 읽으면 부처님이 무엇을 경계시키는지 더 명확해집니다. '아, 내가 법화경을 받아지니고자 하면 법화경을 말하고자 하면 이런 마음자리에 머물고 이런 언행을 하면 안되겠구나.'를 알게 됩니다. 비록 처음에는 글자를 읽어 내가 여러가지 상황에서 그러한지 아닌지에 대해 힘을 써서 스스로를 돌아보지만 경전의 가르침을 가까이하고 사유하다 보면 부처님의 그 가르침이 새겨지고 배어들어 자연스러운 가운데 가르침대로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화경을 귀히 여긴다면 안락행품에서 당부하신 4가지 성품에 머물도록 힘써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