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가족구성원 중에 알콜중독자가 있어서 힘들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글에 대해 적은 답글인데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미 좋은 댓글이 많아서 보탤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같은 불자로서 적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부처님이 포기한 사람은 없습니다. 법화경에 보면 부처는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선업을 행하든 악업을 행하든 부처는 대상을 향해 평등합니다. 이건 변치 않는 진실이니 부처가 포기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사람이 포기할 뿐이지, 평등한 부처님에게 포기가 있을지.
모든 기도가 성취되는지 안되는지 솔직히 저는 잘모릅니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지금 이 순간 제 근기에서 아는 것은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불성은 자비와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기도의 성취가 귀한 불자인 나를 탐진치로 몰고 갈 상황이라면 자비와 지혜의 불성은 그 길로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끊임없이 나에게 외칠 겁니다. 만약 기도의 성취가 지금에서는 이루어질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자비와 지혜의 불성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 자신을 돌아보라고 끊임없이 나를 향해 외칠 겁니다. 물론 그것을 알지 못할 때에는 절망에 빠지기도 하겠고, 알고 나서도 여전히 절망에 빠지겠지만 결국은 그런 생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문득 이렇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기도는 꼭 성취되어야 할까요? 왜 그래야 할까요?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 기도의 마음을 잘 살필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다릅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지점에서 불성이 나를 이끌어가는 모습이 다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도는 바로 성취되고 누군가의 기도는 더디게 이루어지고 누군가의 기도는 영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부처라면, 불성이라면 그 부처, 불성은 흔들리지 않은 평온과 참된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알아가는 것이 수행이며, 그것을 알아 정성을 다하는 것이 어찌보면 법계가 기뻐할 기도일 겁니다.
제 경우 아버지가 인지장애(치매)고 폐가 손상되어 30% 기능합니다. 조금만 걸어도 헐떡입니다. 참 미칠 노릇이죠. 불자니 기도합니다. 물론 제 기도가 충분했다 생각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업이 있겠죠. 지장경에 보면 업은 부모 자식이라도 대신 할 수 없다 합니다. 그 업의 과보가 지금 모습이라면, 나는 그 업의 과보가 빨리, 작게 끝나게 되는 것을 기원하고 감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버지의 날이 밝고 편안해지길, 죽어서는 극락왕생하길 늘 기도합니다만, 왜 지금 병이 낫지 않는가로 좌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병의 완치를 위해 기도할 수 있지만, 내 불성은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고 하는 것 같네요. 제 생각입니다.
왜 가족으로 만났을까요? 원생일 수 있지만, 업생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다시 말해 보살의 서원처럼 원을 세워 태어난 것일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지난 인연, 업으로 인해 이번 생 가족으로 만나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내가 끝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인연에 대한 과보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끝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과보가 일어나는 과정 중에 새로운 씨를 뿌릴 수도 있으니, 정말 좋지 않은 인연을 끝내고 싶다면 나쁜 씨를 뿌리지 말고 마무리를 잘해야겠지요. 원망하는 마음, 어두운 마음으로 정리되는 것이 있을까요? 이런 글들이 죽을듯이 힘든 이의 마음에 닿기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진실 아닌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니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두루 두루 유익합니다. 가족원이 가족 전체를 힘들게 한다면 어느 생엔가 가족 전원이 그 한 사람을 죽을듯이 괴롭힌 인연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될 것도 같습니다.
살다보니 이렇게 알아집니다. 대부분의 어려운 상황은 나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서 내가 변하지 않는 한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다닙니다. 모든 상황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물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빨간 물감이라면 어디에 나를 가져다 놓든 빨간 색으로 물을 들입니다. 빨강이 지겨워서 아무리 부지런히 도망을 쳐도 나라 할 것이 강할수록 주변을 온통 빨강으로 물들이게 됩니다. 떠나고 싶다면 나를 바꿔야 합니다. 공부할수록 점차 명확해져서 어떤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나면 일단 투덜거리지만 결국은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에게 그럴 인자가 없다면 그 상황은 물처럼 흘러가고 먼지처럼 사라질 날이 분명 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외부의 상황이 어떠하든 내 할 도리를 다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알콜중독자인 가족구성원이 있다면 그를 미워하지 말고 내가 할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더라도 그 분은 그 분의 이유가 있는 것이고 님과 가족으로 만나 고통을 전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니, 자비를 배우는 불자로서 수용해야 하고 인과를 배우는 불자로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변하지 않으니 좌절한다? 인과가 분명한 이치를 안다면 그런 마음에 드는 것이 어리석음으로 이끄는 무명임을, 마의 장난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충분해지면 무조건 드러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부처님 가르침의 바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인데 흔들릴 일에 우리 인생을 걸면 안될 일 아닐까요? 잘 알지 못하니 답을 드릴 수 없는 일이지만, 글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확한 답을 할 수 없지만, 다른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좀 더 불자로서 힘을 내고 밝아질 길을 바라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적을 수 있는 내용이 있지만 이미 너무 긴 글입니다. 부처, 불성은 늘 우리 안팎에 가득합니다. 햇빛같고 내리는 비와 같습니다. 또 내가 포기하면 너무 먼 길이 됩니다. 주인이 버린 밭은 잡초 무성해지기 마련입니다. 황무지도 꾸준히 가꾸면 속에서부터 윤택할 힘을 얻게 됩니다. 설령 가족의 모습이 그대로라고 해도 속이 윤택해지기 시작한 황무지처럼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꾸준히 우리가 할 도리를 해나갑시다. 각자의 업이지만, 옆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불자는 큰 힘이 되어줍니다. 좋은 환경으로 바뀌는 것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