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부처님의 가르침과 상충하는 덕명의 주장

향광장엄주주모니 2023. 2. 27. 18:59

공왕불 기도를 하는 이들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가피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멍청한 이가 똑똑해지고 돈이 생기고 병이 낫고 신기가 사라지고 뭐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만약 상황이 극한에 몰린 사람이라면 혹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몰린 것 없는 저도 그런 마음이 드니 말입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어디를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간편하니 이 아니 좋을 수가 없어 보이네요.

 

오늘 그런 글들을 찾아 읽어본 이유는 좀 더 공왕불 기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글을 많이 쓰는 입장이다 보니 기존에 내가 아는 것이 제대로인 건지 좀 더 알아볼 마음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그들의 글을 읽어갈수록 명확했던 생각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이 오더군요. '이 기도 정말 괜찮은 거 아니야'하고 말입니다. 가피글이 많아서요. ㅎㅎㅎ

 

이 시대의 평범한 불자일 뿐이니 지금도 기도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글을 읽어가던 중 보게 된 덕명의 동영상 내용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의 주장이 바르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공왕불 기도만 해야 하는 이유, 다시 말해 공왕불 기도를 이야기하는 아주 기본적인 전제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명확하게 어긋나 있음을 재확인하고 동영상을 꺼버렸습니다.

 

덕명은 '정법시대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상법시대에는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이 중생구제를 마쳤고 지금의 말법시대는 공왕부처님의 시대이므로 다른 불보살은 아무리 불러도 나타날 수가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경전 읽어본 이들은 다 압니다. 그의 말이 많이 이상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지장보살은 미륵부처님 오시기 전까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이 사바세계를 부탁받으신 대보살이십니다. 당연한 결과로 지금 이 사바세계의 담당 불보살을 꼽는다면 바로 대원본존 지장보살이시죠. 중생구제를 다 마쳐야 부처가 되겠다는 지장보살님의 서원(아직도 완성되지 않은)이 있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촉이 존재합니다. 왜 드러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자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흔들려야 할까요?

 

공왕불 기도를 하면서 법화경을 읽어본 분들은 공왕불 기도가 법화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합니다. 덕명의 표현대로라면 하던 것을 하는 겁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기도자들은 '공왕불 기도가 법화경에 나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저 들은 것을 진실이라 믿고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거겠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기도의 출발은 현생을 살아가는 문제에 관한 가피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점차 그 이상을 보게 되는 것이 수행자의 향상일 것입니다. 불교에서 수행은 그렇게 진행됩니다. 그런데 최후의 경인 법화경에 와서 공덕과 가피가 핵심이 된다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건 법화경에서 중하게 다룰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불성의 존재임을 깨달아가는 여정을 법화경은 말합니다. 불지혜에 관해, 성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편안함과 고통, 불행과 행복과 같은 이원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업장과 그 해소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과마저 떠나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단순히 어떤 위대한 존재를 향해 기도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피가 법화경의 존재 이유일 수 없습니다.

 

궁금합니다. 기도 열심히 하는 분들이 그래서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기도해서 업장이 소멸되었고 그래서 행복한 그 단계를 지나면서 지금은 어떤 자리에 와있을까요? 석가모니 부처님을 생각해 보세요. 중생에게 스스로 보이신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자신이 지은 것의 과보 받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재물이 있으나 없으나 늘 평온하셨습니다. 몸이 아프나 안 아프나 늘 평온하셨습니다. 불제자라면, 부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스승을, 어버이를 따라야 하는 게 아닐지.

 

수행은 인간세상에서 먹고살기 편안한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같이 행복과 불행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여여함을 갖춰가야 하고 이원성을 떠나야 합니다. 진리가 그런 것인데, 숙업의 해결, 다시 말해서 업장소멸되어 인생 편안한 것을 강조하는 기도를 들어 법화경을 이해한다면 법화경을 설하신 부처님의 설법을 제대로 받아 지닌 것일까요?

 

모카페에 글을 열심히 올리던 공왕불 기도자의 근황이 간혹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그 마음이 어떠한지. 외부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을 얼마나 넘어섰는지, 법화경의 핵심에 얼마나 통했는지. 공왕불 기도가 똑똑함을, 돈을,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 기도가 얼마나 부처님의 진실된 가르침으로 이끌어가는지.

 

오늘 부처님 최후의 가르침을 글로 적었는데 그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공왕불 기도자들은 한결같이 덕명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달리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자신(누구도 꺼뜨리지 못하는 자신의 불성)을 의지하라고. 공왕불 기도자들은 덕명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늘 변화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법을 의지하라고.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묻겠습니다. 개인의 의견과 부처님 설법이 그대로 담긴 경전의 내용이 상충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요?

 

나마삿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 하는 것은 괜찮지만, 법화경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것은 괜찮지 않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는 부처님 말씀을 잘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법화경 설법을 안다면 법을 훼손하면서 그렇게 편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 설법을 알아볼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의지하지 말고 그저 법화경에 귀의한다는 마음으로 나마삿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를 하는게 나을 것 같네요. 어떤 순간에도 법화경을 훼손하지 마세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성의 씨앗을 훼손하는 참담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받게 되는 과보는 무시무시하다고 경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