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성불 / 공왕여래 처소에서의 결심과 정진
불교는 절대자인 신에게 의지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여러 과정에서 그런 모습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하고 그 불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입니다. 불성, 근본으로 온전히 돌이켜진 각각의 모습을 우리는 부처라고 합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인간이 바르게 성장해 가는 모습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여러 가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납니다.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도움을 받고 다양한 교육을 받게 되죠.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산다면 잘 살았다고 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커 카면서 뜻을 세우고 노력하고 성취하여 각자의 삶을 살아갈 때 잘 살았다고 말합니다.
불교도 이와 같아서 불도에 들게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존재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불성으로 온전히 돌이켜지는 것, 다시 말해서 성불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염불 등의 수행을 할 때 옆에서 도움을 주던 존재들이 수행자가 참선에 드는 순간 모두 사라져서 혼자서 오롯이 해나가야 했다는 수행담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존재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기도의 대상으로 절대적 존재가 있다는 믿음에 의식이 고정된다면 참다운 불교에서 점점 멀어지게 될 뿐입니다. 불교는 그런 가르침이 아닙니다. 설령 지금의 과정에서 어떤 존재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도움을 발판 삼아 당신이 나아가야 한다고 먼저 깨달은 자는 말할 것입니다.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수아난라후라여이천비구기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난에게 최상의 수기가 내려진 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새로 보살승에 오른 대중을 위해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나와 아난은 공왕여래 응공 정변지의 처소에서 동시에 무상정등각심을 일으켰는데, 아난은 항상 부지런히 많이 듣기를 좋아했고 나는 항상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였다'라고. 아난은 스스로의 서원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 그의 수행이 최상의 수기를 받을 정도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핵심은 아난의 수행이 오래전부터 행해졌고 그의 서원에 의해 지금의 모습인 것이지, 그가 행해온 것은 최상의 수기를 받을만한 것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경전의 내용을 읽으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공왕부처님에게 기도를 해서 성불하였다고 해석하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공왕불 기도라고 불리는 신행에서 아주 핵심적인 논지가 되므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왕불의 처소에서 깨달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정진을 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부처님이 계셨다면 법이 있었을 겁니다. 당연히 정법이고 불법이겠지요. 만약 부처님이 설법하셨다면 그 법을 받아 지니고 사유했을 것입니다. 그 법으로 수행해 나갔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공덕 쌓는 행위를 끊임없이 해나갔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공왕부처님에게 기도를 했으며 그러니 우리도 공왕부처님에게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법화법문을 받아지녀서 부처되는 길이 빨랐다는 이야기가 법화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법을 찾아가는 여정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진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어떤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를 의지해나가는 기도, 대부분의 불자들이 많이 해나가는 기도의 모습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화경의 묘장엄왕도 부처님에게 법화법문을 들은 후 스스로 정진하여 묘법연화 법문을 항상 곰곰이 생각하고 통달했다고 나옵니다. 이 왕은 부처님에게 수기를 받습니다. 법을 들은 묘장엄이 부처님에게 기도하는 것으로 수기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교를 전반적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에 더하여 법화경의 가르침을 잘 생각해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공왕부처님에게 기도해서 성불했으니 우리도 공왕부처님 기도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거나 더 나아가 '이 기도 공덕이 최상'이라거나 '이 기도만 공덕이 있다'라는 주장이 뭔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는 찜찜함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