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믿는가, 귀신을 믿는가.
아직 수행근기가 낮아서인지 신경쓰인다.
신묘한 것을 말하면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니 이상한 논리에 끌려갈 누군가가 신경쓰인다.
그런 것에 동화되는 마음이 어쩌면 각자의 인연자리이니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신경쓰이는 나는 편하지 않을 글을 짧게 적어보려 한다.
물론 내 개인의 생각이며 다소 산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무엇을 걱정함인지 대략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믿는가. 그렇다면 그것만 하는게 좋다.
귀신을 믿는가. 그렇다면 부처님으로 포장하지 말고 귀신을 믿는다고 인정하는게 좋다.
잘 모르지만 귀신은 인간보다 많이, 잘 안다고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 생각도 읽고 상황을 안다고 들었다.
아는 소리하는 귀신이 대단하다고 한다면 아는 소리하는 점쟁이, 무당이 대단하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귀신의 말을 믿는다면 이미 불자의 자리에서 벗어나있다고 본다.
불자라면 귀신이 맞는 소리를 해도 무시할 마음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맞는 소리하며 우리 마음을 현혹할 때 부처님 가르침을 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간단한 질문이다.
부처님을 믿는가. 귀신을 믿는가.
부처님을 믿는다면 귀신의 말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불자가 귀신에게 점검받으면 과연 불자인가. 우리 불성이, 부처님이 기뻐할 일인가.
불자는 부처님에게 점검받으면 될 일이다.
매일 부처님을 부른다고 하면서 정작 만나는 것은 귀신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불러서 귀신을 만난다면 그건 염불인가, 염귀인가.
또 불법은 정해진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 미래를 변화시키는 것에 그 의미를 둔다.
만약 변화되지 않는다면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이유가 있겠는가.
정해진 대로 살게 될 뿐이데 어떤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점쟁이들이 과거는 맞추지만 미래를 잘 맞추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미래는 오늘을 통해 바꿀 수 있다.
그러니 미래를 맞춘다고 혹하는 마음은 불자가 머물 자리는 아니다.
그 미래를 바꾸는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이가 불자다.
점치지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잠깐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견고해지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신묘함이 나타나도 매이지 않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
귀신에게 혹해 불심이 흐려진다면 차라리 못보고 못듣는 것이 낫다.
귀신 글에 마음 움직여 따라가고 추구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는가.
아마도 내 현재와 미래의 일을 알려주지 않을까라는 기대심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마음, 괜찮은 마음이라 생각되는가.
부처님을 믿는 불자라면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전적으로 의지하는게 좋다.
오늘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마음에 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