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불자는 가르치는 부처가 있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4. 14. 08:59

합창단 팀장은 정말 이상하긴 했다. 모든 것이 다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 공감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며 자신이 기분 좋을 때에만 잠시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도 같았다. 그로 인해 며칠동안 마음 복잡했는데 문득 어떤 글을 읽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가끔 들어가는 카페인데 글을 읽으면서 부님이 나에게 이리 말씀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의 사촌인 어떤 이는 출가가 늦었음에도 나이가 많다는 것을 내세워 다른 수행자들에게 예를 다하지 않았다. 하루는 이리 저리 유행하던 수행자 무리가 그가 있는 곳에 이르자 사촌은 무리를 향해 자신에게 인사를 하라고 한다. 그 사촌이 출가한지 얼마되지 않은 것을 안 한 수행자는 자신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그러자 사촌은 그것에 수긍하지 않고 부처님에게 무엇이 맞는지 여쭤보자고 한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처님이 사촌에게 말하길 수행자에게 인사하고 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맞다고 하시지만 사촌은 그 말을 따르지 않는다. 사촌이 오만하다고 수행자가 말하자,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그는 전생부터 습이 그러해서 저런 것이니 너희들이 다정하게 대해주어라.'고 하신다.


다정하게 대해주어라. 그렇게 하라고 나에게 권하시고 계셨다. 솔직히 팀장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의 상황이 그에게 최선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었다. 그런데 이제 부처님의 명확한 가르침을 들은 것이다. 순간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자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은 미워할 바가 없다. 다만 합창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일이니 합창이 되도록 상황이 돌아가는 것은 부처님에게 맡기겠다는 마음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거짓없는 웃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말하겠지만 그것이 이러이러해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할 뿐 비난하거나 미워하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글을 읽은 다음 날 우리 팀장으로 인해 간부진들이 다 모여(팀장 포함) 회의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일으킨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자각이 없다는 것을 다른 간부들도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이 그냥 넘길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단장 외 간부진이 스님께 상담을 했고 다음주에 팀 전원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셨단다. 그저께 그렇게 전해들었다. 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찰에서 삼사순례를 다녀왔다. 그리고 마지막 사찰에서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 그 사찰의 4월달 법회지를 들고 왔다. 버스에 올라 잠시 어떤 글이 있는가 살피는데 4월의 부처님 말씀으로 올린 법구경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최고의 벌을 받은 찬나 장로라는 글인데 찬나는 부처님이 궁을 빠져나올 때 부처님을 모시고 나온 시종으로 부처님과의 친분을 내세워 아주 건방지고 거만했다고 한다. 부처님이 여러차례 불러 훈계하셨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부처님이 반열반에 들기 전 찬나를 어떻게 다룰지 묻는 아난에게 부처님은 '그에게 최고의 형벌을 내라라.'고 하시면서 '찬나가 마음대로 말하더라도 비구들은 결코 그에게 말해서는 안되고 훈계해서도 안되고 가르쳐서도 안되고 일체 그와 대화해서는 안된다.'고 하신다.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신 후 아난이 찬나에게 찾아가 그 벌을 전하자 찬나는 슬픔에 빠져 세번이나 정신을 잃고 그제야 자신을 참회하고 제멋대로 하던 습관을 고치고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습일 뿐이니 다정하게 대해주라고 말씀하시지만 어느 순간이 되어서는 최고의 벌을 내려 스스로 뉘우치게 하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은 생각들게 하였다. 왜 그 순간에 그런 글들을 우연히 읽게 되었을까.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처님은 수많은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말을 들려주시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이도 있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 불자이며 불제자인 내가 어떠한가에 따라 수많은 가르침을 설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합창단 팀장에 대한 일이 어떤 방식으로 되어나갈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찬나에게 최고의 벌을 내림으로써 그가 마음돌이킬 기회가 되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일들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 더 적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이 부처님과 친하다고 하면서 사리불, 목건련을 비난하고 악담을 퍼붓는 찬나를 불러 부처님은 두 상수 제자가 훌륭한 사람이며 이런 이들과 도반이 되고 오직 이런 이들을 따라 도를 닦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게송을 읊으신다.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저열한 자도 멀리 하라. 좋은 벗을 사귀고 고귀한 이를 가까이 하라.' 누가 나쁜 친구이며 누가 저열하며 누가 좋은 벗이고 누가 고귀한가.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이다.  내가 가까이 할 이는 누구인가. 나는 가까이 할 만한 사람인가. 두가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날 되었으면 한다. 생생한 부처님의 가르침, 그것도 내가 들어야 할 법문이 들어야 할 순간에 만나지는 신기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뻐하는 날 되었으면 한다.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런 경험이 이어지는 가르침의 세계에 들기를 발원하는 날 되었으면 한다. 


앞의 두가지 이야기는 다른 대상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이런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다정한 마음을 품되, 그를 상대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오히려 좋은 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런데 법화경을 읽는 이라면 이것이 안락행품의 네가지 품성 중 하나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네번째 품성이 그러하다. 법화경을 설하려는 이는 외도자를 가까이는 말되 자비로운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무리 중 찬나 장로처럼 자존심을 세우고 자기 멋대로 하는 우리 팀장도 좋은 변화를 맞이하기를 발원한다. 다음 주에 팀원이 다 모이면 스님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모든 것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혹시 글을 읽으면서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고 내가 가까이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잘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나의 글을 읽지 않는 것이 좋다. 부처님이 그리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라.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