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위험한 자리
카페에 남편, 친가, 시가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오랜 시간 글을 올렸었다. 마음의 혼란함은 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길기도 했지만 산만했다. 글에서도 사람이 느껴졌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바, 어려움을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 댓글을 달았다. 한참 쉬다가 다시 힘들다는 글이 올라오고 한참 쉬다가 다시 글이 올라오는 식이었다. 며칠전에 들어가니 또 글이 올라와 있었다.
글은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법화경 사경을 열심히 하는 모양인지 신체적으로 뭉친 것이 풀리는 현상도 겪는 것 같고 (기도자는 이를 업장 소멸로 말한다) 외부의 환경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자리에 닿은 듯 보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게 걱정되는 지점이 있었다.
법화경은 큰 경전이다. 마음 잘못 먹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이상해지기 쉽다. 부처된 듯 교만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이 사람의 경우는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전력을 다해 기도에 매달리는 모양인데, 법화경 사경에서 오는 공덕으로 이것 저것이 한꺼번에 올라오니 다소 혼란한 듯 느껴졌다. 지금의 상태로는 마음자리가 이상하게 빠질수도 있으리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 사람은 스스로가 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부처님이 가르치는 법은 허무와 거리가 멀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불성의 소리가 아니다. 가정이 있는 그녀인데, 글을 읽으니 혼자 섬에서 사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고통을 벗어났다면 더 이상 그런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밝고 맑은 마음이어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열심히 한 기도겠지만 조화롭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들이 있었다.
기도방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생의 삶을 바탕으로 두는 것이 좋다고 본다. 생활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매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기도조차도 너무 욕심내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엇이든 적정한게 좋다. 적정하다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한다.
기도의 성취에 정답은 없겠지만, 내가 만난 불성을 그녀도 만난다면 허무함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무관심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현생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이어져 있으니 오늘 최선을 다함에 의미를 느끼고 기쁨을 느낄 것이다. 죄업의 참회가 긍정과 밝음으로 나갈 것이다. 나를 괴롭히는 이들조차 미움과 분노를 넘어서 결국은 측은함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어려운 일, 힘든 일이지만 조금씩 그렇게 변화되어 간다. 부처님 법을 제대로 배워나가면 그렇게 된다.
그녀의 수행을 간단히 말할 수 없지만 위험하다. 오늘 댓글을 달았다. 그 글이 도움되었으면 좋겠다. 기도자는 혼자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돌아가지 않기를 너무 헤매지 않기를 참으로 부처님의 뜻을 알아 안락함에 머물고 안락함으로 이끄는 불자되기를 기원한다. 혼자만의 안락이 아닌 모두의 안락이 되기를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