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숙업이 궁금하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2. 23. 11:21

'숙업(宿業, 산스크리트어: pūrva-karma, 팔리어: pubba-kamma)은 지난 생들에서 지은 선업과 악업을 말한다.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에 따르면, 유정의 현재 생의 모습은 스스로 지은 숙업에 따라 자연법칙적으로 일어나는 과보이며 또한 현재 생에서 새로이 짓는 업에 따라 숙업은 그 총체적 양태가 변화되고 그에 따른 미래의 생의 모습이 자연법칙적으로 과보로서 일어난다.'


위키백과에 나온 숙업의 사전적 의미는 위와 같다. 불교사전에서는 '과거의 업'이라고 했는데 위키백과의 내용이 더 상세하여 적어보았다. 불자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여기에 더 보탤 말은 없을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과거의 업연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오늘이 고통스럽다면 과거를 반성하고 바른 행을 지어나감으로써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늘이 행복하다면 감사하고 바른 행을 지어나감으로써 지금의 행복이 이어지기를 바랄 수 있다. 


숙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선업의 과보는 밝은 것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 우리에게 문제되는 것은 악업에서 오는 과보이다.

그렇다면 선업은 무엇인가. 사전에 적혀있길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되는 청정한 행위와 말과 생각. 궁극적인 진리에 따르는 행위와 말과 생각. 좋은 과보를 받을 청정한 행위와 말과 생각.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없는 행위와 말과 생각'을 선업이라 한다.

개인적으로는 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 나가는 것이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는 견고한 선업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바른 것을 안다는 것은 온갖 좋은 일들이 비롯되는 강력한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으로 수행해가는 모든 행위는 불자를 청정하게 만들어간다. 아미타불 염불 한번에 얼마나 오랜 기간의 업이 소멸되는지를 들은 적이 있는가? 부처님의 법은 그러하다. 바른 법이기 때문이며 지혜, 힘, 자비어린 원이 어우러진 법이기 때문이다.


악업은 선업의 반대 의미라고 보면 된다. 이 악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탐진치의 삼독심에서 일어난다. 삼독심이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끊임없이 악업을 짓게 되며 그 결과로 고통스런 과보에 휩싸이게 된다. (일단 윤회를 벗어나는 것은 잠시 접어두겠다.) 모든 과보가 따지고 보면 내가 지은대로 받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원망할 이유도 탓할 이유도 없다. 굳이 탓하고 싶다면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자신을 탓하면 된다. 그러니 현실이 괴롭다면 반성하고 내 할 도리를 해나감으로 업의 종자를 바꿔버리면 되는 것이다. 


(선업, 악업에서 조금 더 나아간 말이 될 것 같은데) 부처님 법을 배워나간다는 것은 선업을 쌓고 악업을 멀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이 비롯된다는 무명을 떠나는 일, 밝히는 일이 된다. 법을 배워나가면서 때가 이르면 단지 선업과 악업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을 넘어선 경지에 닿게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숙업을 말하는 것은 매우 무게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머무르며 이것으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한다면 길을 가던 이가 목표에 이르지 못한 채로 가던 길을 멈추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이 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인과응보를 포함하지만 최종의 목표지점은 거기에서 더 나아간 지점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조금 난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부처님을 배워 선업을 가까이, 악업을 멀리 함으로써 우리 삶이 밝아지며 그렇게 가르침을 배우고 배운대로 살아가다 어느 순간이 되면 숙업을 넘어선 경지를 보게 되리라는 말이다. 오늘 닿은 법이 참으로 중요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 이어진 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을 열고 하루 하루 바르게 살아가면 좋겠다. 어찌되었든 오늘 행하는 진실한 참회와 모든 이의 이익을 위한 선업은 우리 삶을 편안하게 만들 것이다. 선업이라면 그 무엇이든 다가올 과보가 향기로울 것이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신구의의 3가지를 빌어 선을 실천해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