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스님 법문, 가르침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오늘은 글적지 않으려 했는데 승현스님 법문을 보니 나누고 싶어졌다.
1. 부처님 재세시 웁판나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아름다웠다. 중매로 결혼했지만 후일 모친과 남편과 관계하는 것을 보고 다른 곳으로 가서 새 삶을 맞이한다. 두번째 남편과 아이가 없어 얻게 된 후처가 첫 남편 사이에서 얻은 자기 딸임을 알게 되어 또 다른 곳으로 가서 세번째 남편을 얻는다. 그러다 자녀의 결혼식에 상객으로 온 사람이 전 남편임을 알고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그 이후에 만난 마지막 남편은 도박으로 웁판나를 저당잡히니 웁판나는 결국 창녀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부처님과 제자들이 지나가자 사람들이 절하는 것을 보고 웁판나도 그들을 따라 절을 한다. 이 때 부처님이 목련존자에게 그녀를 구하라고 하시니 웁판나가 이르길, '나는 무서운 인과에 휘말린 죄많은 여인'이라 한다. 이에 부처님 이르시길, '실망하지 말라. 아무리 더러운 때도 물에 씻으면 지워지듯 불법의 물은 온갖 인과를 씻어낸다'고 하신다. 웁판나는 수행하여 비구니 중 신통제일이 되었다고 한다.
스님이 적으신 이 일화는 마음에 많은 것을 남긴다. 웁판나는 무서운 인과에 휘말린 죄많은 여인이라고 자신을 칭한다. 그 인과의 무서움을 오랜 삶을 통해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으니,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든다. 이것을 하면 이렇게 안되고 저것을 하면 저렇게 안되는 삶이 이어지고 이어지다 보면 처음에는 '왜 나는' 이라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세상향해 외치겠지만, 그 탱천한 분노는 점차 낙담과 희망없는 수용, 다시 말해 피동적인 절망으로 이어진다. 이런 중생을 향해 부처님은 불법을 말씀하신다. 실망하지 말라 하시니 불법으로 온갖 인과가 씻어진다 밝히신다.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손을 내시어 인과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불자는 인과를 말하고 인과를 수용하니 이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며 머물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인과를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웁판나에게 던지신 부처님의 말씀은 대상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 있으니 인과의 흐름 속에서 고통받고 낙담하는 이들이 그 그늘을 벗어나는 방법은 불법에 있다고 전하신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의견이 있으니, 웁판나에게 그 때 그 말씀을 전하심은 그 때 그 대상이 웁판나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인연이 무르익었다고 하면 될까. 인과의 무서움을 인생통해 실감한 웁판나의 마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흡수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과의 흐름에 휩쓸리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2. 법문에 적힌 또 다른 구절은 이러하다. '내가 나를 찾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이 없다는 마음이 들면 그는 단번에 부처가 되리라. 마음이 있네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라.' 또 세네카의 말이라 하시면서 적은 글은 이러하다. '훈계로 사람들을 선으로 이끄는 것은 어렵지만, 행동으로 이끄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적으신 구절 하나 하나에 온전히 공감한다. 불자는 자신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방편으로 다른 이를 바라볼 수 있고, 수행을 나누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도 찾지 못했으면서 적어올리는 남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 쉬우니 진정한 포교는 그가 어떻게 드러나는가로 인해 힘을 받는다. 글 적는 이에게는 말과 행동을 적용하기 어렵다 생각할 수 있지만, 적는 글에서도 비슷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