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법화경으로 수행하면 육근은 청정해질까
육근청정에 대한 경전 글을 옮겨적고나서 머리를 감는데 갑자기 왜 법화경을 읽으면 육근청정으로 이어질까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글은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콕 집어 생각하지는 않았어도 비슷한 생각을 이미 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나로서는 너무 당연한 논리라 한번 적어볼까 한다.
연기를 생각해보라. 무명에서 결국은 모든 것이 비롯된다. 그 무명으로 인해 우리는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전도망상에 사로잡힌다. 그렇다면 이 무명이 다스려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맞지 않는가?
법화경은 부처님이 방편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진실, 다시 말해 방편의 저변에 흐르고 있고 방편을 거쳐 이르게 하려 했던 진실을 여실히 밝히는 경전이다(경전이 밝히는 진실이 무엇인가는 잠시 제껴두겠다). 맞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는 법화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깨닫고 알리고 베껴쓰는 과정을 통해 부처님이 가르치시는 진실에 점점 닿게 된다. 진실에 다가서게 되면 무명은 점차 힘을 잃게 되며 궁극에는 두껍게 가리고 있던 무명이 사라지게 된다. 맞지 않는가?
청정함은 무엇인가. 가리고 있고 더럽히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 본래의 깨끗함이 청정이다. 맞지 않는가? 그러니 법화경으로 수행하여 밝아지는 것으로 우리는 청정함에 들어가게 된다.
간단히 말해 법화경은 부처님의 온갖 진실된 법을 밝히고 있으니 그 법에 닿게 되면 우리의 불성을 가리던 것, 다시 말해 더럽히고 가리던 것들이 다 사라지게 되며 그 사라진 상태가 바로 육근의 청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법에 대한 이해는 근기따라 변화한다. 당신의 이해는 어디에 닿아 있는가.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육근의 청정이 꼭 법화경으로만 이루어질까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불법이 진실을 담는다면 그 어떤 법이든 흐린 것을 밝히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그 모양과 정도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말할 수 없지만 청정함이라 하는 경지로 나아가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당신은 어떤가. 염불만 지극히 하여 청정함을 갖춰가는 불자도 보았고 법화경을 언급하지 않지만 누구못지 않은 청정함이 느껴지는 스님도 보았다. 법화경을 공부하지만 아직 청정함과 멀어보이는 이도 보았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화경을 설하신 내용을 보면 법화경만 육근의 청정을 가져온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아닌가. 아니라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