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잡을까, 보낼까
인터넷에 올라온 누군가의 글을 보니 불교 기도를 하면 떠난 연인이 돌아올지를 고민한다. 흠...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적지 않은 것은 지금은 어떤 소리를 해도 마음에 닿지 않으리라 생각들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인연을 많이 이야기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삶 속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이 밝아질까.
일전에 기도수행담에 한참 빠져있었을 때 읽은 글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A는 헤어진 애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작정하고 사찰에 들어가 100일 기도를 했는데 100일이 다 될수록 마음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리고 100일이 지나 절을 나서는 순간 마음에서 무언가 '뚝'하고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알아차렸다. 애인과 연결되었던 끈이 그제서야 끊어졌다는 것을.
B는 애인과 헤어졌다. 그런데 그 마음을 돌이키고 싶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하면 돌아올지 몰라.' 기도를 하면 헤어진 애인도 돌아오는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다른 이들에게 글을 올려 부처님 기도를 하면 헤어진 애인도 돌아오는 것인지를 물었다. 어떻게든 하루 빨리 애인이 자신에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두 사람 모두 동일한 경험을 했다. 애인과 헤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자세는 완전히 다르다. 이유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나, A는 애인과의 인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100일의 시간을 들여 기도를 했고 B는 떠나간 애인에 대한 집착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기도를 시작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불교를 바탕으로 보면 너무 뻔한 이야기이다. 무언가 얽힌 것이 있어서 현생에 만났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다면 보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진치로 무장한 짙은 업장, 습은 우리를 더욱 더 큰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알아도 헤어나오기 어려운 일인데, 모른다면 어떨까.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후회하고 다시 다른 구렁텅이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게 된다.
헤어진 것은 그럴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거지로 이어가는 것은 어지러운 삶을 더 꼬아버릴 뿐이다. 결국 시간의 문제이지 다시 헤어질 것이고 그 과정까지 선업보다 더 많은 악업이 쌓이기 마련이리라. 그러니 흘러가는 인연에 대해 욕심을 내지 마라. 집착하지 마라. 다만 내가 충분히 할 도리를 다했는가에 대해서만 고민하라. 그것이 우리가 인연에 대해서 해야 할 도리이며 그것으로 우리 삶은 밝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