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자비에 의해서이다. 선도 악도 아니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고 다만 평등하고 고요한 불성이 우리 앞에 나타나 부처되라고 말하는 것은 자비에 의해서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불자는 이런 부처님의 뜻을 받아지니는 자이다. 자비로 부처를 만나게 되었는데 정작 자신은 자비에 등을 돌린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오늘 어떤이와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의 말인즉 사람이 만나는 어려움들은 다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으니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불보살에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고. 완벽하게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내가 한동안 즐겨찾던 블로그에서 읽었었다. 수행력 높은 비구니 스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각자의 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만나는 일들이니 누군가에게 닥칠 고난이 예견될 때 도와줘서 좋아질(?) 사람만 도와준다는 그런 글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것이 괜찮은 것인가, 가장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 나름 많은 고민을 했었다.
다 맞는 말이다. 일리있다. 그런데 지장경을 읽고 법화경을 읽으면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비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부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안다면 능히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이 불자가 나아가고 권해야 할 길이다. 예를 들어 한 번 고통을 겪는 것으로 그 업장이 해소되고 그가 바른 길로 나아간다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을 겪어서 업장이 해소되기도 하지만 습대로 살아감으로써 또 다른 업의 장애를 불러오는 상황이라면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할까? 지옥길에 더 깊이 들어갈 그 모습을 안다면 손을 내어 이끌어주고 바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 부처님이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손을 내어준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혜롭게 손을 내어줘야 하는 문제가 있으니 무엇이 최적인가에 대한 판단이 명확해야 한다.
이런 대화를 꽤 오랜 시간 했다. 상대는 대화 초반부터 '글과 달리 대화를 해보니 다르다. 가르치려한다, 상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정말 그런가로 고민 좀 했을텐데 오늘은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강요가 아니라 그의 말을 듣고 거기에 대해 내가 아는 법을 말할 뿐인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가 이런 길을 봤어라고 말을 할 때, 그 길을 나도 봤는데 조금 더 보면 이런 길도 있어라고 말하는 것일 뿐인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길을 당신도 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의 원이 있었으니 그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느끼고 강한 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대화가 막힌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막는 것이 나의 상인지, 자신의 상인지 조용히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법화경 종지용출품의 땅 속에서 솟아난 보살들, 석가모니 부처님께 법을 듣고 이 사바세계 아래 허공계에 머물다가 나타난 수많은 보살들, 천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고 오직 정진하던 보살들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들을 가르친 것은 이 법을 위해서였노라고. 그러니 이 법을 펼치라고.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법을 배운다. 그것은 혼자만의 수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법으로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땅 속에서 솟아난 보살들처럼 불법을 따라 정진한 힘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참된 바램 아니겠는가.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했다. 불법의 가르침은 결국 내가 밝아지고 남을 밝히는 그것을 말한다. 그러니 밝아졌다면 밝혀야 한다. 밝히고 싶다면 밝아져야 한다. 고요히 염불하고 독경하는 것으로도 이미 누군가의 세상을 밝히는 일이 되지만 함께 현실에서 마주하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오래 머물 자리가 아니다. 능력이 되고 인연이 되는 모든 자리에서 밝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대가 마주한 자비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말하는가. 넘어진 자를 그저 바라보라고 하는가. 내가 마주한 자비는 이렇게 말한다. 넘어진 자가 있다면 그에게 무엇이 최선일지를 불지혜에 비춰 명확히 알아서 그대로 하라고. 너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넘어진 자를 위해서 움직이라고. 손이 필요하다면 그 손을 가장 바르게 내어주라고. 부처님의 자비가 나에게 늘 그래왔으니 나 또한 그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비교할 수 없는 미약함이겠지만 혼자가 아니니 바른 뜻을 세우면 빛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읽으면 기분나쁠 톤일 수 있겠다 싶긴 하다. 그런데 어떠랴. 오늘은 이 말이 하고 싶은데 더 부드럽게 표현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대화 나눈 이에게 전하건대 기분좋지 않았더라도 밝아지는 그런 일이 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대화였다고 생각한다. 한치도 빈틈없는 불법의 세계니 대화가 이루어진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오늘의 대화로 또 한걸음 더 부처님 법에 다가가는 일이 될 수 있기 바란다. 법을 나누어 밝아지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