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길이 맞다고 확신하면 그 길에 안주하면 된다.
모두가 자신의 길을 간다. 같은 가르침을 들어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을 띠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거기에 대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자신의 길을 주장하고 내세우는 이가 그 길에 확신을 가졌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될까. 완전하지 않다고는 해도 편안하게 안주한 모습이어야 한다. 완전하지 않으니 사소한 흔들림이 있더라도 묵직하고 오랜 흔들림, 불안은 벗어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자신의 길이 맞다고 확신하면 그 길에 안주해야 하고 안주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인가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무엇을 위해 자신의 길을 주장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늘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나를 주장하기 위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길을 간다. 그 길에 불안함이 있다면 다시 점검하고 바른 길을 찾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속으로 불안함이 여전하고 안정되지 않았으면서 나는 전혀 문제없노라 하고 당신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에 힘을 쏟으면 무슨 유익이 있는 것일까. 이 말에 대해 너도 마찬가지일 뿐이라고 누군가 말하겠지만 나는 내 길에 안주하며 대체로 편안하다고 답할 수 있다. 내가 이런 글을 적는 것은 결정적으로 편안해야 할 순간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진실로 받아지녔으면서(그렇게 보인다) 죽은 후에 어찌될까를 걱정하는 사람을 만났다. 한번은 아미타불 염불을 살짝 말해주기도 했는데 지금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법화경을 몇 십년 수지독송하고 그것이 최상의 일이라고 하면서 죽어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발원한다는 사람도 만났다. 부처, 불지혜를 말하는 가르침을 앞에 두고 인간되는 것에 기도의 원을 세운 그 마음이 뭔가 많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것은 이런 간단한 말로 충분하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자신에게서 문제도 답도 찾는게 좋다고 하니 말로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왔다고 하면서 누군가와 교류함으로 마음의 빈 곳을 채우고 싶어하는 사람도 만났다. 물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한참 대화가 진행되고 나서 스스로 알아차려 말하길 교류라기 보다 자신이 동조, 지지를 받고 싶어했나보다 했던 것 같은데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법화경을 공부한다고 했는데 경전의 가르침대로 대승을 말하는 나를 향해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고 상을 내세우며 가르치는 사람같다고 하면서 비비꼬아 말을 하니 답답함, 아쉬움이 느껴졌다. 물론 삐딱하게 볼 여지를 내가 주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좀 과하다 싶었다.
배워서 가고 있는 자신의 길이 맞다고 확신한다면 편안해야 한다. 아는 것과 자신의 행이 일치되지 않는 것에서 오는, 또는 아직 명확하게 알아지지 않는 부분으로 인해 불안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런 마음을 제외한다면 평온해야 한다. 기뻐야 한다. 밝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그 길이 맞다면 나의 마음과 뜻이 그 길을 따라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