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장애인시설 선생님들, 마음의 뜻을 바꾸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4. 3. 11:03

마음에 뜻을 세우는 것은 책임이 따른다.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생각할 것이며 그 생각의 결과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어제는 생각, 뜻, 바램에 대한 무게를 느끼면서 누군가를 떠올렸고 '당신들은 이 일을 안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몇 개월 전에는 이와 비슷한 생각이 올라올 때 방향을 틀어 '좋은 변화가 있기를,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발원했었다. 자연스러운 인과의 흐름, 선을 위한 불자의 노력과 바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아직은 잘모르겠다. 지금의 모르는 부분이 밝아지기를 발원한다.


2박3일 장애인 행사에 스텝으로 동참했다. 가족과 함께 가는 봄여행이라는 테마였는데 대형버스, 중형버스 등 3대의 차량이 이동하는 행사였다. 그 중 한 아이를 맡게 되었는데 가끔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이나 아이들도 대략 아는 얼굴들이었다. 말하기 조심스럽기는 한데 어떤 선생님을 마주하면 복지업무를 하지 않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지만 가만 보면 대상을 향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애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장애아들은 자기표현이 제한되기에 표현력과 힘이 갖추어진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갑의 위치에 서게 된다.


오늘의 글은 정말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이며 다수의 교사가 아닌 어떤 두 교사에 대한 생각이다. 지난 2박 3일을 함께 하면서 내가 맡은 아이에 대해 애정(?)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두 교사에 대해 세운 뜻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뭄에 콩나듯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행사에 스텝으로 동참하게 된 것은 부모님이 참여하지 않은 장애인들을 행사 내내 옆에서 케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1대1 관리체계에 부족한 인력으로 동참한 것이었다. 따라서 관리자가 아니라면 각자 자신이 맡은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아는 부분으로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기간 중 두 여교사는 유독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에 대해 자신의 애정을 표출하고 귀엽다는 말을 남발하고 자기를 좋아하냐고 끊임없이 묻고 뽀뽀를 해달라, 안아달라고 했다(여교사, 여자 아이들이다. 성적인 부분은 아니다). 아마 외부인인 나보다 자신들이 아이와 가깝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언행은 일관성이 있어서 늘 그랬겠구나 싶었다. 분명 애정어린 행동들인데 이상하게도 그렇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거칠게 표현하면 애정의 탈을 쓴 학대로까지 느껴졌다. 왜 그렇게 애정을 갈구하는가. 자기 욕구는 친구, 애인, 가족에게 채우고 직장에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필요를 채워주고 도움이 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왜 자신의 욕구충족을 아이들이 채워줘야 하는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옆에 앉은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너 참 힘들겠다. 저런 사람들하고 같이 지내는 것이 너도 스트레스 받는 일일텐데 다 표현하지도 못하니 너 참 힘들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마주잡은 손을 아이가 꼭 쥐었다. 무엇을 생각할지, 무엇을 느낄지 아이의 마음이 너무 궁금하다. 법화경 육근의 청정, 이럴 때에는 그 청정함이 드러나면 좋겠다 싶다.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당신들은 이 일 안하는게 좋겠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면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무엇이 되었든 자비로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고 지혜로 가득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이 생각이 이루어질 것 같은가. 이뤄질 것이다. 내 바람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