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중요한 것은 정말 내가 어떠하냐는 것일 뿐.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2. 9. 18:30

인터넷 카페에 글을 쓰다 보니 댓글이 달리고 나도 댓글을 단다.

오늘은 달리는 댓글에 대한 글이다.


잘 읽었다는 글도 있고 묻는 글도 있고 비판하는 글도 있고 빈정거리는 글도 있다.

며칠전에 '신묘함에 너무 끌리는 수행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글을 써서 올렸는데 댓글이 하나 달렸다. 핵심은 글에 남을 가르치려는 높은 아상이 느껴지며 내 글들이 체득한 것이 아니라 학문, 이론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첫 댓글을 보는 순간 심장이 불편해졌다. 불편한 마음을 교묘히 가리고 추스리며 아무렇지 않은듯 답글을 써갔다. '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닌데 그렇게 느껴진다면 내 마음이 그러한지 표현이 부족한지 살펴봐야 할 일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짧은 시간 글을 쓰면서 마음이 그렇게 되어갔다. 아니, 원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쓰면서 그렇게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미묘하다. 작은 마음이 글을 쓰며 더 명확해진 것일까.

(글에만 머물지 않고 마음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체득에 가까운가 이론에 가까운가. 체득에 대한 것은 다음에 한번 쓰고 싶다. 지장경, 법화경을 많이 읽는 나에게 지식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의 글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예전에 비슷한 내용이 살짝 담긴 글을 적은 적이 있긴 한데 전적으로 그것을 적기 위한 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 기분좋은 글이 아니었지만, 하루 이상을 정말 그러한가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내 기분이 나쁜가 좋은가가 아니라 내가 정말 그런한가이기 때문이다. 법을 배우고 말하는 것의 의미가 잘난듯이 나를 주장하는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것을 떠나고 싶어 배우는 법인데 남을 가르치려는 높은 아상에 머물러있다면 그것으로 유익이 하나라도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꿀먹은 벙어리로 사는 것이 더 안전하고 유익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나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말함이 아니다. 법을 주장하기 위해 나의 이야기로 말하는 것일 뿐(물론 내 수준에서 이해한 법일 뿐이다).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된다.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을 마음에 두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련의 일들이 정말 그런 것인지, 높은 아상으로 글을 쓰고 있고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빠져 있는 것인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되면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마음을 써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 또한 생각하게 되었다. 언어나 여러 표현의 방식이 내가 이해한 법은 이러하다는 것을 알리는 최적의 지점을 지나서 그 사람이 느끼듯 '너희들은 잘못 됐어. 내가 말하는 이게 맞는거야. 그러니 이렇게 하는게 좋아.'라는 교만함으로 느껴진다면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런데 아쉽지만 사실 그렇다. 나의 최선이 아직은 이 정도라 문제를 알아차리면 조금씩 개선되고 보완될 수 있을지언정 일순간에 휙 달라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이해하면 족하다', '내 이해수준의 글일 뿐이다', '정답은 없다'와 같은 문구를 덧붙이기도 하는데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다. 불성 앞에서 불성 안에서 정말 어떠한지이다.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가장 정확하고 날카로운 평가가 거기서 나온다.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제거리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이 넘어가주는 이해로 문제없는 듯 지나가지지 않는다.


칭찬은 감사하다. 하지만 안심함에 무뎌지고 게을러지고 방향이 틀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순간이다. 비난은 불편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어떠한지를 살피는 귀한 기회가 된다. 그래서 그 비판과 비난의 댓글이 크게 마음을 해치지 않는 것도 같다. 내가 그 사람에게 끝으로 달은 댓글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하듯 스스로를 한번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통해서지만 나를 다시 돌아보고 단속할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하다.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그 마음에 부처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내가 쓰는 글들은 늘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다. 100을 말한다고 내가 100일리 없으니. 100을 말하며 100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려는 평범한 불자다. 많은 사람들처럼. 그런데 0이면서 100을 말하지는 않는다. 맛이라도 봐야 그 맛이 정말 좋다든지 확신에 가득차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먹어보지 않고도 먹은 사람 뺨치게 풀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능력은 거기에 미치지 않으니 그냥 조금 맛은 봤나보네 하면 대략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을 쓰고 나니 모르겠다. 내가 맛은 본건가? 본 것 같긴 한데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