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지나간 설법에 너무 매이지 마라

향광장엄주주모니 2022. 1. 22. 11:57

어제 오랜만에 사찰 법회에 참여하여 음성공양을 올리고 법사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스님의 설법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많은 부분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기도를 통해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하면서 기도의 중요성을 거듭거듭 강조하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설법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더 자신감을 가질만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상하다 여길 수 있지만, 법을 공부할수록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 것이며 불완전, 불안정한 것인지 실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사소한 말이라도 뱉어진 말 한마디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데 하물며 법은 말해서 무엇하랴. 진정 부처가 되지 않고서야 자신이 아는 것이 얼마나 제대로 아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 공부해나가는 과정이니 수행의 성취가 일어난다면 앎의 변화가 일어난다. 어제의 설법과 오늘의 설법이 같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느 한 시점의 설법을 고정된 진리로 받아들이니 어제와 달라진 자신의 법을 알지 못하고 지나간 이야기에 매여 있는 대중들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가볍게 시작한 법문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고민을 공유하시는 그 모습이 공부 익어간 수행자로 인식되어 귀와 마음이 열리는 시간이었다. 

 

진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스님의 말씀을 잘 새겨야 한다. 어제의 공부와 오늘의 공부가 똑같을 수는 없다. 자신이 닿아있는 자리에서 여러 가지 깨달음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을 공유할 것이며 그 결과물이 우리가 접하게 되는 많은 법문일 것이다. 법의 깨달음이 자라고 있는데 여전히 지나간 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슬픈 일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지나간 설법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훌륭하고 좋은 설법이다. 다만 걸음을 따르는 자라면 다음 걸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 이분은 이 당시에 이런 깨달음을 얻었구나'하면 좋을 것 같고 '그 이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때에 따라서는 설법자 스스로가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공부 과정에서 느끼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