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전도된 마음
지혜는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힘이다. 일이 어떠한지 그래서 어떻게 돌아갈지를 꿰뚫어보는 힘이다.
수행을 하는 그대는 지혜의 한 자락을 잡았는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가 나와 함께 소속된 한 단체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가지 말자고 하면서 이유를 말하길, '다 나이든 사람들 밖에 없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 모임의 나이 들었으나 행색이 꽤 좋은 어떤 사람과는 별도로 밥먹고 차마시고 놀러가는 것을 상당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구의 마음은 전도된 마음이구나. 나이가 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행색좋은 이와 어울리는 것도 좋지 않아야 한다. 그도 나이들었으니. 늙어서 싫다는 그 마음이 진실이건 아니면 겉으로 내세운 이유이건 지혜와는 멀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 젊어서의 부귀영화가 늙어 죽을 때까지 이어지리라 자신할 수도 없다. 가만히 보면 자신은 늘 젊을 것처럼 잘 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아마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 지혜롭다면 자신도 하루 하루 늙고 있으며 죽음을 향한다는 사실을, 앞날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니 노쇠한 노인에게서 그처럼 늙어갈 자신을 본다. 노쇠한 노인에게서 지금 나처럼 찬란했을 젊음을 본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에 마음이 닿게 된다. 늙어서 냄새난다구? 좋아하라고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들이 그렇게 되어간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당신은 나이들어서 싫다고 정색하기가 어려워진다. 미래의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비틀린 마음, 전도된 마음을 벗어나겠다. 바르게 알아차리겠다. 지혜롭겠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된다는 말인가? 지혜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시절에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질까요?" 누군가 그랬다. 염불을 하면 지혜로워진다고. 그래서 한 스님에게 물었더니 이리 답하셨다. "염불 해봤어요? 삼개월하고 그 때 다시 나한테 와서 물어보세요."
그 후에 염불을 했지만 엄청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스님을 다시 찾아갔냐고? 아니, 가지 않았다.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염불 뿐만이 아니라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부하면서 자연히 싹트고 배어나는 것이 지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나에게 지혜의 종자가 조금씩 싹트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크지 않지만 예전과는 달리 바르게 보는 힘이 이미 생겨나고 있었다.
일들이 어떠한지 어떻게 돌아갈지 바르게 알아차리는 그 마음의 힘이 지혜다. 그대는 지혜로운가? 자식만 귀히 여기고 부모를 홀대한다면 자식에게 나역시 홀대할 부모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런 것들을 바르게 보는 힘이 부처님 법을 배우는 불자가 갖추는 지혜의 한 자락이다.
무명에서 모든 것들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혜는 이 무명을 벗어나게 한다. 그러니 부처님 법을 바르게 배워나갔으면 좋겠다. 무명이 사라지게. 전도되지 않게.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