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러워도 손대지 않는다.
귀가 혹하고 눈이 반짝 떠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너무 탐스러워 마음이 혹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려 한다.
불자가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근본, 바탕이 흐리다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아 무너지기 마련이다.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때가 되면 무엇이 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 모두에게 드러날 날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지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가끔 정말 궁금하다. 생을 달리한 선지식이라 하는 이들의 지금은 어떠할까.
과거를 기억할 힘있는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안다면 얼마나 스스로 '잘했다'고 만족할 것인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내 말이 맞으니 잘 따라오너라'하며 편안한 미소 지을 이가 얼마나 있을까.
내가 생을 달리할 때에는 그 이후가 편안했으면 좋겠다.
뿌리고 나누는 모든 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 바른 일, 밝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늘 부처님과 함께 하기를, 불성의 지혜와 자비에 머물기를 발원한다.
추가로 적자면 기도해서 상황이 아름답게 변하는 것이 그 자체로 불자의 미덕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인고 하니 그의 편안은 환경에 의지한 것일 뿐, 그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로 편안한 사람은 환경이 편해서 편한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도 극락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생각해보라. 상황이 불편해진다면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그것을 편안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
예를 들어 오늘 나를 편안케 해주는 이가 있어 찬탄하는데, 내일 그것이 사라지면 그 때에도 당신은 찬탄할 것인가.
그런 것을 넘어서고 자유로워져야 참으로 그 진리에 귀의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죄짓는 습성이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다시 죄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변하고 습성이 변해야 참으로 편안할 수 있으며 죄업에서 멀어진다.
공부하는 이들이 하는 것은 외부의 힘에 의지해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에 있지 않다.
결국은 자신이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니, 어찌보면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공부하는 것이다.
무엇에 인연을 두고 싶은가.
시간이 지나도 편안할 일, 변치 않는 진리에 마음을 두라.
답은 모든 부처님이 전하신 가르침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담은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지 제대로 알아가자 말하면 불편할까.
아무튼 한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어제부터 엄청 글쓰고 있다.
부처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넘어가셨을까. 침묵이 최선인지 모르지만 이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