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탓할 대상을 명확히 하라.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2. 23. 18:55

세가지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1.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 소개를 시켜줘서 사람을 만났다. 그와 친밀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돈을 빌려주고 나서 받지 못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그러는 사람이었다. 후에 그 사람을 원망하기도 소개를 시켜 준 지인을 원망하기도 했다.

2. 가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방송을 보면 참 어이없기도 하고 그렇다. 자신의 사적 탐욕을 위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착취하는 교주를 인간 아니라면서 욕하기도 했다.

3. 결혼한 지인이 있는데 늘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가졌다. (늘 정신적인 사귐이라고 하는데 속으로 개뿔이라고 했다) 지인이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면서 투덜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노래방을 가든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자신보다 더 과한 행동을 해도 아무런 말도 안하는데 자신은 별일이 아닌데도 구설수에 오른다고.


다 들어봤음직한 그런 상황들 아닌가. 이 모든 이야기는 원망의 대상이 있고 대부분 그 대상을 밖에서 찾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불교를 배우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가 하고 싶다.


소개를 받는다고 다 친밀한 사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믿음을 소개받는다고 다 빠져버리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와 어떤 행동을 한다고 다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동일한 환경이라도 그 환경에 노출된 이가 다르기에 결과가 상이하다. 이 사실에 닿게 되면 탓할 대상이 누군인지,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것에 힘을 써야 하는가의 답이 나온다.


건강한 사람은 세균이 가득한 공기를 마시고도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하지만 허약한 사람은 작은 세균에도 온전히 영향받는다.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근본적이고도 장기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나를 바꿔야 한다. 허약한 나를 잘못이라 생각하며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견고한 방어책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좋은 인연과 상호작용하도록 나의 바탕을 바꿔나가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올바른 것에 끌리고 바르지 않은 것은 거부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그런 인자를 내면에 심고 배양해야 한다.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외적인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지만 동일한 상황을 맞이해도 상호작용하는 모양이 완전 바뀌게 된다. 잘못된 사람, 잘못된 말을 대하게 되면 쉽게 말해 엮이지 않게 된다. 나와의 화학적인 작용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도 괜한 구설수를 부르는 이상한 기류에 휩싸이지 않게 된다. 모든 사건은 나와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기에 발생한다. 그러니 생각해보라. 앞의 세 가지 상황에서 누구를 탓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그런 작용을 일으키는 인자가 가득한 자신을 탓하고 바꾸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면 그런 인자를 바꾸고 바탕을 바꿀 수 있을까. 내 경험으로는 부처님을 가까이 하고 그 가르침을 가까이 하고 그대로 실천해가는 노력이 변화를 가져온다.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고 그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그렇게 되어간다. 악한 것, 밝지 않은 것은 점차 멀어지게 된다. 가까이 하는 것이 싫어지게 된다. 아무리 감언이설이더라도 교묘하게 가리더라도 이상한 말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불필요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된다. 그럴 일을 만드는 상황과 멀어질 뿐더러 내가 내뿜는 색깔이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탓할 대상을 밖인 아닌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해결책을 자신에게서 찾아 시작하는 것이 지혜롭다. 우리 삶의 밝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