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에서 수행을 배우다.
4년 전인가 사찰에서 법화경을 꾸준히 읽어가던 중 인연이 되어 합창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내면에는 '음성 공양'이라는 의미가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노래할수록 점차 고운 소리로 부처님께,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다는 원이 커졌고 열심히 연습한 덕분인지 초창기에 비해 실력이 향상되어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음성공양의 환희심으로 인함인지 노래를 하는 내내 행복했는데 스스로 보지 못한 내 표정이 보기에 좋았는지 여러 사람이 호의적으로 말해주고는 했었다. 당신의 표정이 정말 밝다고.
그 이후 취업을 하면서 전에 비해 연습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합창단으로서의 명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작년에 직장을 관둔 이후 시간 부자가 되었음에도 합창 연습과 음성공양에 거의 참여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가기 싫은 이유야 다양했지만 생각해보면 더 이상 노래 부르는 것이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창 실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마치 수행에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그동안 쌓아온 수행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나는 노래를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한참을 쉬다가 작년에 다시 연습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 단원들이 많이 반가워해주었다. 다른 파트의 사람들은 내가 와서 팀의 소리가 좋아졌다고 말해주었고 그런 인사치레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아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어느 날 녹음하여 듣게 된 내 소리는 참 듣기 거북했다. 싸움을 하는 사람처럼 지나치게 우렁찼고 혼자만 튀어나와 민망할 지경이었다. 팀원 중 한 사람이 말하길, 나의 소리가 전에는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좋았으나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살짝 기분이 상했으나 사실이니 어쩔 것인가. 장애물에 봉착한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로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자 소리를 다듬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큰 기쁨과 의지 없이, 어정쩡한 책임감(?), 소속감(?)에 이끌려 이럭저럭 소리를 내며 연습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법회 날에 비로소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깨달음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행사 당일이 되자 귀찮은 마음, 가기 싫은 마음이 되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음성공양'을 올린다는 생각이 마음에 일었고 '옴마니반메훔'의 육자진언이 마음에 들어왔다. 이렇게 떠오른 생각들에 좋은 기분이 되었다. 무조건 노래가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법회에 서기 전 연습을 하면서 숨이 차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 어려웠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의 컨디션이 되었고 결국 불안정한 소리의 음성공양을 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부끄러운 법회가 지나갔다.
그 이후 어떤 고민을 어떻게 했는지 의식의 흐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사실이 시간을 흐르면서 명확해졌다. 나에게 합창은 부처님을 위한 공양, 인연 된 이들을 위한 공양, 불러주는 공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을 놓치면 이미 다 놓친 것인데 어느 순간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노래를 잘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진정 행복했던 것도 모두 합창이 음성공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근본을 놓치고 핵심을 놓친 내가 어찌 생생할 수 있겠는가. 지난 합창 연습 때 그 마음이 되어 다시 노래했고 마음이 소리를 다듬어주자 소리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지휘자 선생님이 '법회 때도 이렇게 노래하면 좋았잖아요.'라고 말씀하셨다. 단원을 향한 말이지만, 나를 향한 말임을 왜 모르겠는가.
합창을 하면서 내 수행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것 같다.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마음이 이어져있기에 합창의 진퇴가 곧 내 수행의 진퇴와 이어짐은 너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모습이 너무도 닮아있어서 마치 쌍둥이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점이다. 생명 같은 본마음을 잃어 합창이 사그라들었다면 나의 수행도 그렇지 않을까. 무엇을 위해 수행을 해왔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변화가 있고 진보가 있다고 느껴지던 순간, 나의 수행심은 불보살의 마음을 닮고자 했었다. 경을 읽고 염불 하면서 그렇게 배워졌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서는 문득문득 내 수행이 '지나온 발자국을 다시 매끈하게 다듬는' 그런 과정에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새해 수행에 대한 소망으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싶다 발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게 되는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을 돌이키고 온전히 한 후에야 다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합창에서 배운 이 소중한 교훈을 잘 새겨 생한 날을 살아야겠다.
여전히 합창은 진행 중이며 아직 넘지 못한 난관이 있고 또 새로운 난관을 만나겠지만 정성을 다할 것이고 결국은 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