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수행이 아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관세음보살이 계신다고 하면서 쓴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릴 때 자신이 가만히 앉아있으면 천상의 사람들이 내려와서 천의를 뿌리고는 했는데 어느날인가는 그들 중 어떤 이가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는 것 같은 증상을 보이며 두려워했고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회피하는 모습이었다고.
경전 읽은 것을 토대로 생각하자면 천상의 복이 다해 쇠퇴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순간인 것 같다. 만약 글을 작성한 이가 지장경이나 다른 경전을 읽어서 복 짓는 법을 알고 있었다면 그 법을 설해 고민에 빠진 천상인간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었을 건데 하며 아쉬음을 느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지장보살에 대해 설명하고 지장보살 명호를 부르라고 했을텐데 라고 생각했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염불수행 많이 한 사람에 대해 쓴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염불을 하면 많은 존재들이 자신과 함께 염불하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되어 환희로웠다고. 작년 말에 한달간 집중적으로 염불을 할 때 그런건가 싶은 생각들게 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잠을 자던 내 위로 무언가가 깡총 깡총 뛰는 바람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는데 얇은 이불 위로 느껴진 그 발길의 감촉이 너무 선명했다. 그저 아주 작은 강아지같다고 생각했는데 염불을 하려는 어느 순간 눈 앞 쪽에서 작게 두번 짖는 강아지 소리를 들었다. 혼자만의 염불이 아님을, 내가 염불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존재가 있음을 실감했었다.
조용한 곳에 앉아 염불을 하거나 경전을 읽을 때 우리는 혼자만의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혼자만의 수행이 아니다. 염불을 하면 듣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 경전을 읽으면 그 법을 듣는 이들이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든 분명한 것은 혼자만의 수행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수행은 누군가의 세계를 밝히는 선한 행위, 아름다운 행위가 능히 될 수 있다.
2주 전엔가 어느 스님이 설법하시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예전에 큰 스님이 설법하면 산을 지키는 신들도 법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그것이 어디 비단 큰 스님 뿐이겠는가. 각자의 법력, 근기, 인연따라 수 많은 존재들이 수행의 유익, 법의 유익을 얻기 위해 모여들 것이다. 그러니 수행하는 이는 누군가의 세상을 밝히는 한량없는 복을 짓는다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염불하고 경전을 읽어야 한다. 상상해보라. 그대가 경을 읽고 염불할 때 그대의 주변에 모여들어 법을 듣고 함께 염불하는 존재들이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