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는 것이 좋지 않다만
화를 내는 것이 얼마나 무용하며 해를 입힐 뿐인가에 대한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답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고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화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 닦인 바에 따라 화를 내기도 하고 내지 않기도 하며 화를 내더라도 그 정도가 다르다. 그러니 불자가 화를 낸다면 그의 수행이 그 정도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런데 화를 내는 것보다 더 해로운 것이 있다. 잘못된 자리에 앉아 잘못된 곳을 향해 나가면서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화를 내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해롭다. 그런 처지라면 아무리 화를 멀리하고 자비롭다 하더라도 원만하기 어렵다. 차라리 제대로 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곳을 향해 나가면서 화를 내는 자가 희망있다 할 것이다.
불자는 늘 자기점검을 우선시해야 한다. 밖을 향해 먼저 말을 하게 된다면 이후라도 그 부분에 대해 자신이 어떠한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참으로 편안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 법은 알면 알수록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글을 적거나 말을 하거나 결국은 아는 소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법에 다가간 사람의 아는 소리는 견고함과 동시에 철저하게 겸손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보니 보이는 모습(좋아보이는 소리, 바른 소리, 자비, 정의, 허접한 유식함)에 잘 속는데 자신은 속지 않는다. 잘못된 불법 공부가 상대에게 어떻게 해를 입히는지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많이 이상했다. 바른 소리는 가까이 들어야 하는 것이며 자비는 불자가 갖춰야 할 품성이다. 바른 것에 대한 것, 자비, 지혜는 귀히 여기는 바라 나의 글에 늘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혹시 그 속이는 불자에 내가 있는 것이라면 글을 적는 자의 진심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 꿰뚫었다고 확신하는 자신의 근기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교묘하게 가리는 것은 두렵다. 어떤 곳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철저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바른가가 되어야 한다. 가끔 나도 감을 말하고 느낌을 말하고 꿈을 말하지만 육근의 청정을 이뤄 명확하지 않는 우리 아닌가. 가르침과 느낌이 상반된다면 느낌을 던져버리는 것이 맞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욕망과 습에 더 부합될테니 말이다.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바른 것으로 나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면 아까워하지 말고 하나도 남김없이 던질 수 있어야 한걸음 나갈 수 있는 순간도 온다.
더 큰 것에 속아넘어가면서 작은 것에 속아넘어가지 않는다고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어리석음과 가깝지 싶다. 수행을 하다보면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 때가 위기이자 기회이다. 불성이 이끄는 것은 늘 최고를 향하지만 우리의 습과 욕망은 다른 곳으로 나아가게 이끈다. 그러니 많은 경우 익숙하고 편한 것, 내 욕망이 원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 아마 글을 적은 이도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왔을 것이고 그 순간에 어떤 뜻을 세우고 마음두었기에 그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다. 에너지가 충만하여 부지런하니 이를 어이할꼬. 각자 인연일 뿐이지만 그런 부지런함이 다른 이의 길을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의 마음이 인다. 그러니 좋은 것에 뜻을 두고 순간 순간 돌이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적을 두는 날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