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남전스님)나의 마음의 움직임을 귀신에게 들키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5. 18. 14:13

카페에서 읽은 글인데 남전스님의 일화라고 합니다.

 

어느 날 남전스님이 연락도 없이 한 마을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마을 사람들이 이미 그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남전스님은 깜짝 놀랐다. '내가 여기 올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가 오는 것을 알았을까?'
그래서 남전스님이 마을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때 마을의 노인이 앞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대답했다.

"어젯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스님께서 오늘 방문하신다는 걸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이 말에 스님은 깊이 탄식하였다.

"쯧쯧, 나의 수행이 아직 부족하구나. 나의 마음의 움직임을 귀신에게 들키고 있다니."

그 후 남전 스님은 더욱 은밀하게 수행 정진에 힘썼다.

 

카페에 올려진 글은 '수행은 들킬세라 안으로 해야'라는 제목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인데 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일화를 보려고 합니다.

스님이 말한 것은 수행의 부족이며, 마음의 움직임을 귀신에게 들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들키지 않게 은밀히 수행함을 말함이 아닌 거라 이해됩니다.

물론 수행자의 덕목이 내세우거나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정진하는 것에 있지만 말입니다.

위 일화에서 방점은 수행력이 아직 충분하지 않아 귀신에게 그 마음이 읽힐 정도라는 것에 있습니다.

 

조금 이해를 돕기 위해 예전에 읽은 어떤 스님의 일화를 빌어오죠.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약간 각색이 될 수도 있음을 이해해주기 바라며 글의 흐름이나 논지가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세간에 잘 알아맞힌다는 사람에게 자신을 보입니다.

제자를 가르치지 위함인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합니다.

아무튼 스님을 보고 맞히는 이가  '아주 안 좋다'라고 하니 스님은 제자에게 '내가 그에게  어떤 것을 보였다'라고 합니다.

다시 자신을 보여주자 맞히는 이가  '좋다'라고 하니 제자에게 다시 '내가 이번에는 다른 것을 보였다'라고 합니다.

다시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여주자 맞히는 이가 '알 수 없다'라고 하니 '내가 이번에는 이리했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정말 기억나지 않네요.

 

아무튼 이 일화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수행력이 깊은 이는 자재하여 보이고 감추는 것에 걸림이 없습니다.

마음을 놓아버리면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남전스님이 말씀하신 수행의 부족이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저로서는 귀신에게도 그대로 읽힐 만큼의 수준에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스스로 질책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남전 스님의 일화에 적힌 제목처럼 수행은 내세우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수행이 바르게 지어지면 수행자의 눈은 밝아져 삼계를 알아차리지만 수행자는 보이고자 하는 만큼, 보이고자 하는 대로 보이는 경계에 닿게 됩니다.

뭐,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