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어가다
이틀전 직장에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서류작업을 하다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업무를 끝내고 잠자기 전 한시간은 경전을 읽어오고 있었는데, 그 날은 이야기가 이어져서 (주로 제 개인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했고 그에 대해 동료가 답변 비슷하게 하면서) 결국 작업을 마치니 새벽 0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법화경을 읽지도 못했고 말하지 않았으면 차라리 좋았을까 라는 일말의 더러운 후회(표현이 너무 원색적이네요)가 묻어나는 찜찜한 밤이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것과 관련하여 상대를 말하기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자신과 상충되니 마음 불편해진 것 같았습니다. 평소의 제 시각이 감정적인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보는데, 아무튼 사회복지실무자의 가치관, 행동으로 더 적절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시각으로 바라보다 보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해서도 적절하다든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든지 하는 나름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가장 핵심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어떠한가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놓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적절하지 않은 것에 휩쓸리고 싶지 않고 또 가급적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의 뜻을 세웠기에, 때로는 미흡하여 표현이 울퉁불퉁하지만 나름의 노력을 해나가는 중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때로는 안하니만 못한 일들도 상당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날은 정말 후회하면서 0시를 넘겼으며 법화경을 읽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이 참 불편할 수 있겠다는 고민도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 아침에 깨어나서 하루종일 동료와 편안했습니다.
우리가 상대에 대하여 '이런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는 것은 매우 제한된 정보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조작될 수 있고 착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24시간을 붙어있다보면 본연에 가까운 사람이 알아지기도 합니다. 가끔 볼 때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제 근무방식은 정해진 순번에 따라 동료 1명과 팀이 되어 한달동안 일을 합니다. 이 동료와는 두 번째 한달 중에 있습니다. 이 분과는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정말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 약삭빠르게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너무 강하고 확실하여 놓칠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첫번째 달의 어느날인가는 그것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이야기를 한 배경이 있지만 그건 넘어갑니다). '꼭 돈을 벌어야 되는 이유가 있으세요? 일하기 싫으면 직장 관두면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너무 일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 이후 어느 술자리에선가 취한 상태로 이 일을 언급한 것을 보아 마음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을 하고 있구나 했습니다. 아무튼 당시 그 말에 기분나빠하는 표현을 하지는 않았는데, 다시 만난 이번 달에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 달라져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변화의 계기가 되는 요인들이 분명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을 보면 변한 것이 단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지만, 아이들 씻기고 먹이고 상호교류하는 것을 보면 그 안에 내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저도 좀 놀랍니다. 이 분이 저보다 선임이고 저는 초짜인데, 행동에 내가 있고 말에 내가 있습니다. 물론 착각일 수 있고 보여지는 부분만을 취하는 것일 수 있지만, 마음이 상응해가지 않는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부분도 있기에 뭔가 닮아간다, 공유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난 밤 저와의 대화에서 사회복지사로서의 내 뜻을 표현하자, '발달장애인은 아픈 아이들일 뿐이며 시설에 잠시 머물다 가니 절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엄마마음으로 그냥 아이들 마음편히 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로 제 마음의 씁쓸함을 일게 했었는데, 표정이 바뀔만큼의 심리적 저항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동료인 제 뜻에 조금은 물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단락의 글은 너무 밥맛일 수 있겠지만 ㅋㅋ 그냥 적어봅니다.)
사람은 능히 물들일 수 있고 물들어가기도 합니다. 일방적인 것을 없을 것이니 물들이기도 하고 물들기도 하고 이리 저리 조화롭게 이어지겠지요. 중요한 것은 나의 색이 견고하지 않다면 상대를 물들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색이 아름답지 않으면 물들이는 것은 죄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이런 류의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네요. 동료 선생님도 '모든 이들이 변화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것을 나누는 이가 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팀을 이루는 3명의 선생님 중 가장 불편한 분이었는데 그런 것이 사라진 것 같은 이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