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보시, 방생의 마음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7. 20. 12:14

많은 사람들이 복을 얻기 위해 보시를 하고 방생을 한다. 그 안에 대상을 위하는 귀한 마음이 깃들어 있을 테지만, 선업이라고 할 행위로 인해 나에게 돌아올 복을 기대하면서 보시를 하고 방생을 한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가장 좋은 보시, 방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그 답을 무주상보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보시 중에 최고의 보시는 무주상보시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무주상보시는 ≪금강경≫에 의해서 천명된 것으로서, 원래의 뜻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로 표현되었다고 하며,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주고 주었다는 생각에 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알지만 억지로라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수행의 길에 들어 나아가다보면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닿을 날이 있을 것이고 인과로 얽힌 세상사를 가늠하게 될 것이니 그저 바른 일을 하는 것으로 삶이 저절로 채워져 나갈 것이지만) 

 

당신이 불자라면 굳이 복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뿌린대로 거두기 마련이라는 인과의 이치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심었고 때가 무르익는다면 그 과보는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보시가, 방생이 좋은 일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저 행하고 잊어버려도 된다. 정말 좋은 일이라면 오지 말라고 해도 인연이 무르익은 때에 밝은 빛으로 삶을 채워주지 않겠는가.

 

그냥 자연스럽게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일어난 것이든, 작심하여 일으킨 것이든 좋은 일을 하고는 바로 잊는 것이 좋다. 잊지 않는 마음은 댓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기에 내가 너에게 베푼 이만큼이라는 틀을 상대가 벗어날 때 분노로, 실망으로 마음의 불을 붙인다. 그 분노와 실망을 표현하지 않아도 지옥이요, 표현하면 주변이 온통 지옥이다. 그러니 주었다면 잊는 것이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

 

또 개인생각이지만 불교에서 말하길 모든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정한 만큼 그려지는 것이지 않겠는가. 보시를 하고 방생을 할 때 개인의 복을 빈다면 어떤 공덕이 되었건 그만큼을 벗어나기 힘든 일이 아닐까. 그러니 틀을 정하지 않고 매이지 않고 그저 자비로 움직이는 무주상보시는 무량한 공덕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장 귀한 보시, 가장 큰 보시, 다시 말해 틀로 계량할 수 없는 허공같은 보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인데 잘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