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자비
부처님의 자비를 나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토삼부경을 읽으면서 그 자비를 조금은 맛보았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글로 적은 바가 있지만 오늘 다시 적어지고 싶은 것은 그런 자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의 원은 중생의 성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성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상살이하는 중생의 여러가지 입맛에 대해 귀를 기울여주기도 하면서 점차 부처님 가르침에 들게 한다.
그 과정이 얼마나 길지, 얼마나 다양할지 나도 모르지만, 중생의 마음, 행에 의해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지극한 자비심으로 일어났기에 부처님은 늘 중생이 어떠한지를 알고 그에 맞추어 다양한 대비책을 베풀어주신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미타부처님의 일을 중생에게 설하셨다고 생각한다.
믿고 부르기만 해도 극락왕생이 정해지고 즐겁게 공부하여 성불의 길로 들어서는 길을 설하셨다고 이해하고 있다.
세상이 탁하고 중생의 근기가 하열해도 믿고 따르면 괴로움을 떠날 수 있도록 공덕으로 극락을 장엄하신 아미타불.
힘든 날이 되면 아미타불을 믿고 불러 괴로움을 떠나라고 간곡히 설하신 석가모니불.
모두가 지극한 자비다.
이 자비에 한계가 있는가. 이것만 좋다는 길이 있는가.
우리들의 좁은 이해로 부처님의 무량한 자비를 왜곡하지 말았으면 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만나 성불의 인연에 드는 것을 원하심이지, '이것을 해야', '저것을 해야'라는 한계에 머물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아는 길을 정성껏 알려주자.
부처님이 그러하셨듯이 불자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그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또한 알려주자.
그 다른 길의 끝에 모두가 만나는 법이 있음을 알려주자.
길은 하나로 이어진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일체불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