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의 업설과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시절인연은 어떻게 정해질까. 시절인연을 거론할 때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말하길 "시절따라 인연되지 않으면 어딜가나 마찬가지다. 지혜, 방편 등등 말은 쉬우나 그것은 지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인연이기에 당연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문맥의 흐름상 '당신이 아무리 여러가지를 빌어 말해도 결국은 시절인연으로 일어나는 것 뿐이니 그걸 알아야 한다.'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런 선상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들어보겠는가.
모든 것에는 하나로 정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대로 뚫어 통찰하지 못한다면(나는 그런데 당신은 어떤가) 한 측면을 생각하고 다른 측면을 생각해야 온전함에 가까워진다. 다시 생각해보자. 시절인연은 어떻게 오는가. 위 정의에서 보듯 선행된 것이 있었고 해오는 것이 있어서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진 순간 일어나는 것이 바로 시절인연이다. 시절인연은 고정불변인가. 글쎄다. 나로서는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정불변으로 삼은 이에게는 그런 일일 뿐이지만, 부처님이 가르치신대로 '지어간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에게는 충분히 가변적인 일이 된다.
100을 양보해서 고정불변이라고 하자. 그래서 시절인연일 뿐이라고 하는 그 마음이 당신의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변화함을 전제하는 수행의 과정에서 정해진 일일 뿐임을 말하는 것 자체가 외도스럽다는 생각이다. 또 선행된 것이 시절인연을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지금 나의 뜻과 행동이 앞으로의 시절인연을 불러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을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바른 것에 부합되도록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시절인연이 닿아야 되는 일이니 '아니면 말고, 되면 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할까.
무엇이 온전한 것인지, 무엇이 바른 것인지 사실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글을 적는 것은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셨고 그 길은 오늘 당신의 자리에서 바르게 살아가라고 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내 할 도리를 다해나가는 것, 그것이 불자가 갖춰야할 자세 아닐까.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라는 한정된 생각이 아니라 어디를 가더라도 무엇이 바른 것인가,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며, 이 모든 노력이 쌓이고 이어져서 모든 시절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시절인연을 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을 잘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