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위계를 깨버리는 사람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5. 20. 11:17

직장에서 문제가 있었다. 회의 끝에 팀장과 이야기를 하는데 나에게 이런다. "선생님은 인성에 문제가 있어요. 선생님이 군생활했다고 해서 위아래를 잘 알 것 같았는데 위계를 깨버리는 사람이에요. 선생님은 머리, 가슴, 행이 따로 노는 사람이에요" 서로의 시각과 입장이 다르니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실제 그런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긴 했다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했던 발원 중 이런 것이 있다.

'이런 곳은 다 망해버려야 해. 이 사람들은 관둬야 해.'

왜 나는 그런 발원을 했을까.

 

시설은 문제가 많았다. 주요 직위자들의 덕성이 부족했고 머리는 나빴다.  머리가 부족해도 덕이 충족되면 부하들의 머리가 그 덕 안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덕이 부족해도 머리가 충족되면 적어도 업무는 원활하게 돌아가게 지도할 수 있다. 자리에 맞는 품성이 갖춰지지 않으니 일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병을 달고 사는 것 같았다. 장애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어떤 학생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 1년만 참으면 돼요.' 늘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듣던 그 친구는 1년이 지나면 시설을 떠나는데, 그 말을 하면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느껴졌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내로남불, 그것이 충실히 지켜지는 조직이었다.  물들고 싶지 않아 부처님을 불렀다. 물들까 그것이 두려웠다. 다 적기 어렵다. 내가 그곳에 얼마나 머물까를 두고 고민했다. 피하는 것이 좋은가, 피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이런 고민이 지속되었다.

 

나의 도리를 해나가는 것으로 답을 삼자 했지만 많은 벽에 부딪쳤다. 머리가 나쁘고 마음이 나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물론 작년보다 사람들의 행동이 많이 변화하긴 했으나 오랜시간 물든 탐진치가 어디 쉽사리 사라지겠는가. 이야기를 나눠보니 결국은 내가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이 옹호하는 이보다 다른 직원과 웃으며 지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런 것 같았다. 군림해야 하는 이가 나로 인해 위축되어가는 것 같으니 이것이 다 위계를 흐리는 것으로 비춰진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조직은 없어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고 나쁜 것이 사라지고 좋은 것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바램이었다. 지금의 것은 망해야 했고 지금의 사람은 사라져야 했다.  껍데기가 같아도 속이 완전히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게 일을 하면서 마음에 담은 원이었고 그것을 위해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솔직히 위계를 깨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물론 다 자기입장에서 하는 이야기겠지만, 훌륭하지 않아도 이상해도 대부분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감내하면서 지냈는데 그런 말을 듣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도저히 나오면 안되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이제 만 1년도 안된 하급 직원인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라며 살짝 빈정섞인 농을 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으나, 다시 생각하니 그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크게 보면 내 발원과 일치되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썩어빠진 위계는 다 깨지는 것이 맞으니 그리 느꼈다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속으로 이런 말을 해주려한다. 그래, 좋은 것을 바라는 내가 온 힘을 다해 그대들이 만들어낸 이 어리석고 고통주는 환경을 다 초토화시켜버리겠다. 빠른 시간 안에 스스로 지어온 탐진치의 과보를 절실하게 깨닫고 진정한 불자가 되었으면 한다. 그대들이 그렇게 입에 담는 관세음보살님은 그대들의 어리석음이 깨지는 것을 바랄 것이니 말이다. 그대들의 즐거움과 편안함이 지켜지면 무엇할까.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악업, 자신이 잘났다는 교만의 악업만이 쌓일 뿐인데.

 

나도 남도 똑같다. 바뀐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한다는 것을 믿고 알고 그것을 위해 좋은 뜻으로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들이 싫은 것일까. 굳이 따지자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자비를 거두면 안되는데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이니 스스로 자비를 구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