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중심이 잡혀야 흔들리지 않는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3. 22. 19:55

2, 3년 전인가 홍익학당 동영상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다. 당시 법화경도 열심히 읽고 사유하여 나름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결이 찾아지던 시기였다. (일전에 이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글 적은 적이 있는데,) 이 때 나로서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동영상에 빠지기 전에는 어떤 주장을 읽더라도 내가 이해한 부처님 가르침의 결들이 살아있어 주장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고 이상한 지점을 만나면 왜 그런 것인가를 어럽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읽거나 보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 상당부분 그러했다. 그런데 윤대표의 강의를 즐거이 듣다가 어느 순간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 도통 잡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흐려지는 것 같은 혼란함이 있었고 이대로라면 불법의 이해가 윤대표의 싸이클대로 온전히 흘러가리라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잠시 강의듣던 것을 그만두고 법화경 독경으로 돌아갔다. 기억으로는 오래지 않아 기존의 결이 회복되었고 그 이후에는 동영상을 보면서도 취할 바와 가릴 바를 알게 되었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아무튼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에 대해 부처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경전을 읽으시라 말하는 것은 나름의 중심,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진 내 중심이 잡혀야 위험하게 휩쓸리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나온다. 중심이 잡혀야 잠시 흔들려도 회복이 가능해진다. 어제 오늘 공왕불교에 대해서 글 쓰고 있는데 내가 기도자들에게 늘 권하고 싶은 말이 바로 직접 가르침을 마주하여 나름의 중심을 잡아가라는 것이었다. 사실 모든 불자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선지식, 법사를 만나 불도에 들게 됨을 알고 있으나, 요즘 온전히 믿을만한 법사,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그런 분을 만나도 모든 가르침을 다 받아지닐만한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배운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나름대로 노력하여 디디는 땅이 있어야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일부러 공왕불 기도자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무작위라 특별한 인연이 아닌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믿으셨던 공왕 부처님, 수천년을 이어져내려온 법화경 경문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공왕 부처님"이라고 적고 있었다. 읽어는 보았을까. 그 공왕여래라는 말이 어디에 나오는지. 아난에게 수기를 하는 품에 한번 나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난의 수기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을 향해, 아난과 부처님이 '공왕여래 응공 정변지의 처소에서 함께 무상정등각심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다. 이것을 말함인가? 새로운 법화경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공왕여래를 빌어 의문을 제시했을 때, 법화경의 공왕여래를 공왕불이라고 한다는 답변을 읽은 바가 없다. 단지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행할 때 믿었던 부처님을 공왕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적자면 법화경에는 공왕여래 외에도 수행하는 여러 보살들이 찬탄, 공경하는 아주 많은 부처님들이 나온다.


왜 이런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에 매여 휩쓸리는 것일까. 경전같이 날 것 그대로의 가르침을 마주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년 365일 걸어갈 자신이 있다면 내 앞의 길이 어떤 길인가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중심을 갖는 신행을 해나갔으면 한다. 만약 내가 경전읽고 사유함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과정을 게을리했다면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가에 대한 생각없이 누군가의 주장에 흠뻑 빠져 '그것이 참으로 옳다' 하면서 본래 내 뜻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불자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날인가 그 중심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면 한오라기도 남김없이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어야 한다.